"스타트업 거품 빠지는 중…벤처형PEF 만들어 VC 투자 새 영역 개척할 것"

[CEO&STORY] 김창규 우리벤처파트너스 대표
"작년까지 유니콘기업 많이 나왔지만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 영향 커"
"심사역, 성공보수 보다 기업 발굴·성장서 보람 느껴야"

김창규 우리벤처파트너스 대표가 14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앞으로의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성형주 기자

김창규 우리벤처파트너스 대표는 벤처 투자 업계에서 이례적으로 30년가량 한 우물을 판 베테랑이다. 1994년 우리벤처파트너스의 전신인 KTB네트워크(옛 한국종합기술금융)에 공채 11기로 입사한 김 대표는 2년 전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까지 창업가들과 부대끼며 투자 업무만 담당하면서 잔뼈가 굵었다.


벤처 투자 업계는 대박을 좇아 회사 옮기기를 밥 먹듯 하기 때문에 김 대표는 천연기념물로 불린다. 지난해 초까지 제2의 벤처 붐이 업계를 휩쓸며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유니콘이 곳곳에서 등장해 벤처캐피털(VC) 운용역들은 수백억 원의 성공 보수를 받거나 대기업으로 적을 바꿨다. 그의 선배들인 KTB네트워크 공채 출신 상당수가 지금은 VC를 창업해 독립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김 대표가 30년간 한자리를 지킨 것은 벤처 심사역으로서의 자긍심 때문이다. 그는 “처음 밴처캐피털 업계에 입문했던 30년 전에는 성공 보수라는 개념은 없었고 투자가 성공하면 격려금을 주는 정도였다”면서 “보수보다는 심사역이 투자를 발굴하고 주도할 수 있게 해주는 KTB네트워크 특유의 문화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직 제의가 많았지만 투자해놓은 기업들을 생각하면 KTB를 떠날 수 없었다”고 추억하면서 기관투자가(LP)를 설득해 자금을 조달하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벤처 투자가로 나선 계기에 대해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초반 금융투자 업계에서 높은 연봉을 주던 동남리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리스사는 기업에 대출을 해주던 소위 ‘갑’이었지만 그는 리스사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고 본능적으로 인식했다. 김 대표는 “리스 회사들의 경우 사채 발행 한도가 상법 규정보다 2배 정도 많았는데 그럼 부채비율이 너무 높아져 시절이 좋을 때는 잘나가지만 위기가 오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학창 시절 다양한 논문 등을 섭렵하며 공부한 벤처 투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김 대표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 미국의 VC가 하는 역할과 투자 방식 및 성과 등을 들으면서 이 일은 상당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예견대로 2000년대 접어들며 리스사들 대부분은 경영난 속에 사라졌고 벤처 투자 붐이 일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까지 VC들이 적지 않은 성과를 일궜지만 많은 부분이 심사역의 실력보다는 저금리로 유동성이 넘쳤던 시장 트렌드 덕분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지난해 인센티브(성공 보수)를 많이 받은 심사역이 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유동성 시장의 혜택을 본 것”이라며 “벤처 투자는 긴 호흡으로 접근하고 장기 전망에 기반해 투자를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부 거품이 꺼진 벤처기업 투자를 위해 덩치 큰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만드는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SSF)를 조성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유니콘 기업이 많이 나왔는데, 과도한 유동성으로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버블이 생긴 것이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거품이 꺼져가고 있다” 면서 “벤처형 PEF를 만들어 상장 전 지분 투자나 메자닌(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처럼 전업 PEF들이 하기 어렵고 VC의 영역이 아닌 분야를 집중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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