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조 5927억 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영업이익률도 10%에 근접했다. 현대차(005380)는 반도체 부진의 여파로 1분기 영업이익이 6000억 원대에 그친 삼성전자를 처음으로 제치고 상장사 중 영업이익 1위 기업에 올랐다.
현대차는 25일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에서 1분기에 연결 기준 매출액 37조 7787억 원, 영업이익 3조 5927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7%, 영업이익은 86.3%씩 늘었다.
현대차의 1분기 영업이익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3조 5927억 원이라는 분기 영업이익은 증권가의 평균 전망치(컨센서스)인 2조 9117억 원보다 20% 이상 높은 수치다. 1분기에만 매달 1조 2000억 원 안팎의 이익을 남긴 셈이다. 특히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을 뜻하는 영업이익률도 9.5%로 2013년(9.7%) 이후 분기 기준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
현대차의 기록적인 실적은 고수익 차종 중심의 판매 확대, 수익성을 방점에 찍은 제 값 받기 정책, 철저한 원가 관리 전략 등 세 가지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며 1분기 글로벌 판매량을 지난해 대비 13% 늘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제네시스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비싼 차종’의 판매 확대에 집중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현대차의 1분기 전체 판매에서 제네시스와 SUV가 차지하는 비중은 57.8%다. 올해 들어 팔린 차 10대 중 6대를 차지한 셈이다. 2년 전인 2021년까지만 해도 이 비중은 48%에 머물렀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아니지만 고수익 세단으로 분류되는 7세대 디 올 뉴 그랜저가 국내에서 본격 판매된 점 역시 수익성 개선에 힘을 보탰다.
상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현대차는 차를 제 가격에 판매하며 수익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1분기에 현대차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지급한 인센티브는 대당 963달러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미국 시장의 평균 인센티브 비용이 1250달러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인센티브는 미국에서 딜러들이 차를 판매할 때마다 제조사가 지급하는 일종의 판매 장려금을 말한다. 인센티브를 높이면 딜러가 소비자에 차를 저렴하게 팔 수 있어 판매량을 늘릴 수 있지만 회사의 이익은 줄어든다. 현대차가 가격을 할인하지 않고도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그만큼 경쟁사와 비교해 탄탄한 수요층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매출원가율 개선도 수익성 증가에 기여했다. 올해 들어서도 각종 원재료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현대차의 1분기 매출원가율은 79.6%로 지난해(80.9%)보다 되레 낮아졌다. 현대차가 원재료와 부품을 안정적인 가격에 조달하는 관리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여기에 우호적인 환율도 수익성 개선에 한 몫 했다. 1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은 전년 동기 대비 5.9% 상승한 1276원을 기록했다. 해외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에 원·달러 환율 상승은 호재다. 우호적인 환율 환경에서 해외에서 수익성이 좋은 고가 차량의 판매가 늘면서 환차익도 덩달아 증가했다.
현대차는 이날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대응에 자신감을 표했다. 이미 리스 차량 판매 비중을 기존 대비 7배 늘리는 데 성공했고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면 2026년부터 모든 차종이 IRA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은 “분명한 것은 우려하는 것만큼 IRA의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이라며 현대차가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 차량 판매에 집중해 이미 충분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IRA는 최종 조립을 북미에서 하고 핵심 광물과 배터리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도록 규정했지만 리스와 렌털 등 상업용 전기차는 이런 요건과 상관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는 “IRA 전기차 보조금에 대응하기 위해 5%에 불과하던 미국의 리스 차량 판매 비중을 지난달 말 기준 35%까지 확대했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모든 차종이 IRA 보조금을 받는 시점은 2026년으로 예상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전용 공장이 2025년 양산을 시작하고 SK온과의 배터리 합작공장도 가동되면 이듬해부터 전 차종이 보조금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기차 사업에서 이미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구자용 현대차 IR담당 전무는 “전기차에서 정확히 얼마의 마진이 나오는지 공개할 수 없지만 현재 수익이 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부문의 마진 10%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 진출 중인 중국 전기차 업계에 대해서는 적수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구 전무는 “중국 제조사와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지만 우리 제품의 경쟁력이 우수하다고 생각한다”며 “세계에서 상을 휩쓸고 있고 소비자들도 강점을 보고 현대차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코로나19 사태로 3년 가까이 계속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사실상 끝났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서 부사장은 “1분기에 생산 목표를 99% 달성했고 2분기에도 계획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반도체 수급난은 국지적으로 남아 있지만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벗어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