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대통령, ICC 탈퇴 시사했다가...'푸틴 지키기' 비판에 번복

"여당이 ICC 탈퇴 결의" 발언
'푸틴 체포 의무 회피' 비판에
하루도 안 돼 번복..."발언 실수"

2월 9일 (현지시간) 연례 국정연설 중인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EPA연합뉴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자국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탈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가 하루도 안 돼 철회했다. ICC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ICC 탈퇴를 검토했다가 파장이 일자 진화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남아공은 올해 8월 열리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 의장국이어서 푸틴 대통령의 남아공 방문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날 남아공을 국빈 방문 중인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프리토리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주말 회의를 거쳐 ICC 탈퇴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해 "특정 국가에 대한 ICC의 부당한 대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 입국 시 체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월 ICC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아동 불법 이주에 관여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ICC 회원국들은 체포 영장 발부 대상자가 자국에 입국할 시 체포 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남아공이 8월 22~24일 개최되는 브릭스 정상회의를 앞두고 ICC 탈퇴 절차를 밟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남아공은 옛 소련 시절부터 ANC를 지원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는 결의 채택에 기권했고, 올해는 러시아와 합동 해군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파장이 일자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날 밤늦게 자신의 ICC 탈퇴 관련 발언을 정정했다. 남아공 대통령실은 성명에서 "대통령은 남아공이 로마 규정(ICC 설립 협정) 조인국으로 남을 것임을 명확히 하길 원하머 국제법의 일관되고 평등한 적용을 위한 캠페인을 계속해 나갈 것"며 "이번 해명은 집권 ANC 주최 언론 브리핑 중 나온 발언 실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실은 "유감스럽게도 (라마포사 대통령은) 비슷한 입장을 잘못 확언했다"고 덧붙였다.


FT는 "라마포사 대통령의 실수는 남아공에 상당한 외교적 혼란을 몰고 올 것"이라며 "ICC에서 탈퇴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8월 브릭스 정상회담에 참석할 경우 남아공이 처한 딜레마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마 규정에 의거해 가입국의 탈퇴는 유엔 사무총장이 탈퇴 공식 보고를 받은 시점에서 1년 후에나 발효되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2016년 다르푸르 학살 사태를 이유로 ICC로부터 체포 영장이 발부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체포하지 않았다가 비판을 받자 ICC 탈퇴를 추진한 바 있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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