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만 정밀 타격해 ‘꿈의 암 치료기술’로 불리는 중입자가속기가 국내 첫 가동을 눈 앞에 뒀다. 약 3000억 원을 투입해 중입자가속기 3대를 들여온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서울대병원, 제주대병원이 도입 속도를 내면서 빠르면 4년 내 전국 3곳에서 중입자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는 전립선암 환자를 첫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달 말 또는 내달 초 중입자가속기를 정식 가동한다는 소식에 국내 도입을 기다려 온 환자들의 진료 예약 문의가 빗발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입자치료는 X선이나 감마선을 이용하는 기존 방사선치료와 달리 가속기(싱크트론)으로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고정형 또는 회전형 치료기를 통해 암세포에 에너지빔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빔이 인체를 통과할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암조직을 지나치는 순간 에너지 전달이 절정에 이르렀다가 소멸되는 ‘브래그 피그(Bragg Peak)’ 원리를 이용한다. 생물학적 효과가 X선보다 2~3배 우수한 데도 암세포 이외 다른 정상 조직에 대한 영향은 적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를 두고 ‘암치료 명사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입자치료는 혈액암을 제외한 모든 고형암에 가능한데 특히 골육종·췌장암 등 저산소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난치암 세포에서도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 연세암병원이 첫 치료대상으로 정한 전립선암은 일본에서 중입자치료로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두 번째 암종이다. 중등도 이상 위험군의 경우 5년 동안 전립선암 세포가 다시 자라지 않는 생화학적 무재발률이 일괄 90% 이상으로 보고되며 70~80% 수준의 X선치료보다 뛰어난 효과를 인정받았다. 연세암병원은 현재 보유한 중입자치료기 3대 중 고정형 1대를 시작으로 내년 봄까지 회전형 2대를 추가 가동하며 적용 대상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한국은 지난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계기로 일본·독일·중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대만에 이어 중입자가속기를 보유한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비급여 기준 치료비용은 6000만 원 내외 수준으로 암종 및 횟수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 암환자들이 해외 원정을 떠날 때 치료비용만 1~2억 원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 외에도 국내 병원 2곳이 중입자가속기 도입을 확정했다. 지난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부산시 기장군 중입자가속기 구축사업 주관기관으로 선정된 서울대병원은 2027년 치료 시작을 목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도시바 에너지시스템즈&솔루션즈와 중입자가속기 설비 도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국내 세 번째로 중입자치료센터 건립을 공식화한 제주대병원은 운영 목표시점을 2026년으로 잡았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2027년 청라의료복합타운에 조성되는 서울아산청라병원(가칭) 또는 서울 송파구 본원 중 한 곳에 중입자가속기를 도입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