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기술유출 처벌, 무거울수록 좋다

이건율 사회부 기자


“바늘 도둑이 쉽게 소도둑 됩니다.”


한 대형 법무법인(로펌) 변호사는 해마다 거듭되는 국외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 대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서초동에서 뼈대가 굵은 그가 유독 국외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 대해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력 하나로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국가 산업기술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위기’라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6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국외 유출 사건은 총 117건이다. 이 가운데 약 30.7%(36건)가 국가 핵심 기술 사건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기업 예상 매출액, 연구개발비 등을 기초로 추산된 피해 규모는 약 26조 원에 이른다.


해마다 국가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으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 특히 사건 자체가 의도성이 짙은 범죄지만 ‘엄한 처벌’은 찾기 어렵다. 대검찰청이 가천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연구용역 ‘기술 유출 범죄 양형 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유죄가 선고된 496건 가운데 89.3%(443건)에서 ‘계획성’이 드러나거나 인정됐다. 기술을 유출하는 목적은 본인 회사에 이용하거나(361건·72.8%) 다른 기업에 판매(43건·8.7%)하는 등 사적 이익 추구였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의 평균 징역 선고량은 1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절반(59.5%·295건) 이상이 집행유예였다. 또 10명 가운데 2명(141건·28.4%)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으나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은 7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검찰은 해당 범죄에 대한 구형 기준을 강화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국외로 국가 중요 기술을 빼돌리는 이들에 대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도 주요 양형 인자로 도입한다. 28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행보에 산업·법조계의 시선이 몰리는 이유다. 현장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경쟁에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무기로 기술 우수성을 꼽는다. 또 국부 유출로 이어지는 국외 산업기술 유출을 막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엄한 처벌을 꼽는다. 이제는 대법 양형위가 나서야 할 때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 행보에 나설 때 법원 신뢰성 향상은 물론 국가 경쟁력도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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