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對)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자 중국이 공격적으로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중국이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에 대한 안보 심사에 돌입한 가운데 중국에서 마이크론의 판매가 금지돼도 중국 반도체 업체가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마이크론 사이버 안보 심사로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울 기회를 얻게 됐다고 진단했다. 천자 인민대 연구원은 미중 간 긴장 고조가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마이크론 제품 판매가 중국에서 금지될 경우 YMTC 등 중국 업체들이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SCMP는 상하이 최대 컴퓨터·전자부품 상가인 태평양디지털플라자의 일부 상인들도 최근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 상가의 상인인 류베이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구매 시 삼성이 여전히 최선의 선택”이라면서도 YMTC와 ‘선전킹뱅크테크놀로지’ 같은 중국 업체들의 SSD 제품이 삼성의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상가의 다른 상인들도 YMTC 같은 중국 메모리반도체 회사들이 외국 경쟁 업체보다 가격을 낮춰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자상거래 플랫폼 징둥닷컴에서 한 업체는 YMTC의 반도체로 만든 2TB SSD를 509위안(약 9만 8000원)에 판매했다. 같은 용량의 삼성전자 SSD는 1049위안(약 20만 원)에 팔리고 있다. 앞서 지난달 31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사이버 안보 심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천문학적 투자로 자국 반도체 산업의 자립을 돕고 있다. 최근 SCMP는 중국 기업 정보 사이트 톈옌차를 인용해 중국 국영투자가 3곳이 490억 위안(약 9조 4600억 원)을 YMTC에 투입했다고 전했다. 상하이시도 최근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의 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건당 최대 1억 위안(약 193억 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부품·원자재, 전자설계자동화(EDA) 등 반도체 장비와 소재 관련 대규모 프로젝트는 전체 투자 규모의 최대 30% 혹은 1억 위안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상하이 외에 최근 장쑤성·저장성·광둥성 등도 현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발표했다. 18일 중국의 ‘제조 허브’ 광둥성은 총 5000억 위안(약 96조 원) 규모에 달하는 약 40개의 중요 반도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에도 글로벌 1위 업체에 필적할 만한 수준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모닝스타아시아의 주식분석가 펠릭스 리는 “서방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 통제로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SMIC가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칩워(Chip War)’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는 “중국 정부는 최첨단 반도체를 원하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자금이 투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