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보람찬 3시간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양한 대답을 할 테지만, 저는 뮤지컬을 보는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공연장 객석에 앉아 불이 꺼지는 순간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커튼콜까지, 장장 3시간의 여정을요.
모두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뮤지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뮤지컬을 몇 번씩이나 다시 관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저처럼요. 2021년 인터파크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뮤지컬을 예매한 139만 명 중 12.6%는 같은 공연을 2회 이상 예매한 ‘N차 관람자’였습니다. 3.7%는 11번 이상 관람한 사람의 비율이었다는데요. 코로나19 기간에도 100명 중 약 3명은 같은 뮤지컬을 보고 또 봐도 만족감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열광하는 ‘N차 관람’은 어떤 순간에 시작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걸까요?
저는 2016년 뮤지컬 ‘드라큘라’를 관람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브람 스토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오디컴퍼니의 ‘드라큘라’는 2014년 초연에 이어 2016년 재연을 선보였습니다. 당시에 공연이 진행된 세종문화회관의 벽에는 밤안개를 형상화한 듯한 뿌연 로고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의 성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려는 것처럼요. 홀린 듯이 자리에 앉아 생전 처음으로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빨간 머리의 드라큘라가요.
드라큘라와 ‘미나’의 사랑 이야기가 애달프게 담긴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주인공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두 아는 흡혈귀 드라큘라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것은 물론 신기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너를 사랑하는 건 나를 살아있게 해(Loving You Keeps Me Alive)’라는 넘버가 관객의 눈물 콧물을 빼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드라큘라를 해치우려는 ‘반 헬싱’보다 월등히 강한 카리스마를 드러내면서도 미나를 향한 순정을 구구절절하게 잘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인에서 젊어지는 순간의 시각적 효과를 극적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배우 김준수가 분한 드라큘라는 콸콸 흐르는 피처럼 생동적인 젊음과 함께 서정적인 양면을 그려냈습니다.
그가 커튼콜에서 관객을 향해 인사하고 관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가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박수를 열렬히 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공연의 여운이 가실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만든 넘버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됐습니다. “끝이라 생각 마, 이젠 시작일 뿐. 장례식을 가장한 새 생명의 축제…” 유튜브에 접속해서 공식 채널에 올라온 노래들을 들었지만 이 알 수 없는 갈망을 충족하기엔 턱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보고 싶다. 또 다시 드라큘라를 보고 싶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티켓 예매 앱을 열어 간신히 티켓이 있는 날을 찾아 제 일정을 맞췄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8년 EMK뮤지컬 ‘엘리자벳’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와 극작가 미하엘 쿤체가 만든 이 뮤지컬은 전세계적 인기를 자랑하는데요, 한국에는 2012년 처음으로 초연됐습니다. 19세기에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 폰 비스텔바흐의 비극적인 인생을 다룬 뮤지컬 ‘엘리자벳’은 ‘죽음’이라는 형이상학적 현상을 의인화해 당시 시대적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라는 설명처럼 엘리자벳의 생애 내내 죽음은 그를 쫓아다닙니다.
2018년 그해 겨울, 제가 블루스퀘어에서 ‘엘리자벳’을 무려 7번이나 관람했던 이유는 풍족했던 지갑도, 유달리 여유로웠던 시간도 아닙니다. 그 모든 걸 넘어서 김준수가 연기했던 ‘죽음’의 엔딩 장면에서의 표정이 계속 기억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날렵한 동물처럼 움직이는 사뿐한 걸음에 맞춰 움직이다가 때론 사람들에게 입맞춤을 건넵니다. 입맞춤을 받은 상대방은 말 그대로 죽음을 겪게 됩니다. 엘리자벳을 사랑한 죽음은 엘리자벳 또한 자신의 세계로 이끌어오려고 하죠. 화를 내거나 비웃고, 혹은 다정하게 위로하면서 엘리자벳을 설득하는 죽음입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엘리자벳과 죽음은 바라던 대로 입을 맞추게 되지만, 죽음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엘리자벳, 내 품에 안겨. 자유로울 거야, 모든 싸움도 끝난 거야. 당신을 인도해줄게…”라고 노래했던 죽음이지만 결국 사랑의 시작은 엘리자벳의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입니다. 강렬한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보며 이 허무한 사랑을 직시하는 표정. 그리고 저는 관객석에서 그 표정을 눈에 가득 담아두고 싶어 계속해서 예매표를 늘렸습니다. 매일 미세하게 달라지는 표정은 유튜브나 TV에서 찾아볼 수가 없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제 좌석은 전진, 앞으로의 전진을 이어나갔습니다. 더 가까이 ‘엘리자벳’을 감상한 만큼, 무대와 연기의 이모저모를 뜯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공연이 있던 날에도 ‘엘리자벳’을 보내기 싫다는 서운함이 찾아올 정도였죠. (다행히 ‘엘리자벳’은 2022년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왔습니다)
올해는 김준수의 ‘데스노트’가 네 번째로 돌아왔습니다. 그간 모차르트나 ‘엑스칼리버’의 아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토니 등 수많은 캐릭터를 N차 관람했지만, ‘데스노트’의 ‘엘(L)’도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캐릭터입니다. 2015년 초연에서 홍광호의 ‘야가미 라이토’, 김준수의 엘, 정선아의 ‘아마네 미사’는 전설적인 캐스팅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조합이기도 하죠.
올해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 ‘데스노트’의 공연을 다녀오면서 심각할 정도의 데스노트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지난해 오디컴퍼니의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선보인 ‘데스노트’는 더욱 화려한 LED 무대로 몰입감을 높인 데 이어 올해에는 렘과 미사의 감정선도 깊어졌습니다. 렘의 솔로 넘버 ‘잔인한 꿈’에 미사도 함께 부르는 부분이 추가됐습니다. 사신 ‘류크’ 역에 장지후, 렘 역에 이영미, 미사 역에 류인아 등 새로운 캐스팅이 추가돼 신선한 느낌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사연을 선보이는 데스노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와일드혼의 중독성 있는 넘버뿐만 아니라 원작 만화에서 검증된 캐릭터성을 무대 위에서 마음껏 뽐낸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가 없어, 꿈을 꾸는 걸까. 정말 죽였잖아 나의 손으로…” 동명의 넘버 ‘데스노트’를 부른 후 사신을 흉내내며 사람을 죽이는 라이토와 그에게 제동을 거는 유일한 적수 엘의 등장 장면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합니다. ‘비밀과 거짓말’ 넘버에서 반듯하게 정돈된 서재 속의 라이토와 고풍스러운 의자가 놓인 엘의 방, 그리고 살인자 ‘키라’를 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장소가 서로 대비되고 뒤바뀌는 모습. 본질적으로 엘과 라이토는 서로 같기에 겨룰 수 있는 상대라는 점이 무대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될 때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커튼콜 후 공연장을 나설 때 어떤 관객이 큰 소리로 “이렇게 집중한 적은 처음이야”라고 말했던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비롯됐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이기 때문일까요, 이제 일상을 살아가면서 당장이라도 납치 사건이 발생한 후 용의자가 알 수 없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올 것 같습니다. 브라우니나 마카롱을 먹을 때는 엘처럼 검지와 엄지를 사용해 높이 집어든 후 먹어보기도 하고요. 혹시 길거리에 노트 하나가 떨어져 있진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데스노트를 주운 후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MBTI가 혹시 N은 아니냐구요? 맞아요!)
제가 ‘N차 관람’을 시작한 이유는 뮤지컬 배우 김준수로부터 시작됐지만, 저 이외에 수많은 관객들은 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배우를 좋아할 수도 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하고 싶을 수도 있고, 공연장의 공기 습도가 그저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티켓 값을 아까워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좌석을 찾기 위해 티켓 예매 앱을 ‘산책’하는 것도, 티켓팅 전쟁에 뛰어들어 친구들에게 함께 예매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전부 불타오르는 무언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대가 주는 행복, 공연 시간 동안 노래와 무대 장치, 연기가 조화로운 종합 예술 속으로 흠뻑 빠져들기 위해서. 우리의 ‘N차 관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0만 원 넘는 돈을 내고 뮤지컬 공연장에 갔는데, 앞 사람 키가 너무 커 두 시간 넘게 고개만 기웃거리다 온 적 있나요? 배우의 노래 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여운이 남아 같은 돈을 내고 본 공연을 또 본 적은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느라 답답한 적은 없나요? 세상의 모든 뮤덕(뮤지컬 덕후)의 마음을 대신 전하기 위해 뮤덕 기자가 나섰습니다. 뮤지컬 애호가를 위한 뮤지컬 칼럼, ‘어쩌다 커튼콜’과 함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