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료 가격이 출렁이며 한국전력의 적자가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주가는 30년 전(1993년 4월 30일 종가 1만 8706원)으로 곤두박질했고 한전 주식을 가진 연기금과 개인투자자들의 자산도 줄었다.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면서 금융 비용은 치솟고 채권시장 전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악순환을 넘은 악의 연쇄반응이다.
유일한 해법은 전기요금 정상화라고 하는데 적자를 메울 만큼 인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원가 이하’ 전기요금은 사실상 산업 부문에 대한 우회적 보조금이다. 가뜩이나 수출이 줄어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는 마당에 수출 경쟁력을 깎아 먹을 카드는 쓰기 힘들다. 가계는 팬데믹발 양적 완화의 부메랑인 고물가로 신음하고 있다. 이들에게 한여름을 앞두고 준조세 시한폭탄을 날리는 것도 정치적 부담이 크다. 정부 여당이 미적거리는 이유다.
아직 명시적으로 탄소배출부담금을 매기지 않지만 전기요금에 암묵적으로 포함된 탄소 비용은 산업 부문의 탄소세를 정부가 대납하는 것, 즉 산업 부문의 탄소를 정부가 대신 배출하는 것과 같다. 3월 발표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정안을 보면 기존 NDC 대비 산업 부문 감축률을 11.4%로 3.1%포인트 낮춘 대신 전환 부문(발전 부문)의 감축률은 45.9%로 1.5%포인트 늘렸다. 산업계가 NDC 달성이 어렵다고 지속적으로 호소하자 정부가 팔을 비틀기 쉬운 전환 부문에 짐을 옮겨 지운 것이다.
전환 부문은 2021년 7.5%에 그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1.6%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6년 반 남았다. 국내 총발전 설비 용량의 약 4분의1을 책임지는 한전 자회사들이 선봉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원가는 다른 발전원보다 비싸다. 돈이 들어갈 일만 남았다.
신재생에너지 민간 투자 확대를 위해 한전은 전력과 신재생공급인증서(REC)를 고정 가격 장기 계약으로 구매한다. 민간 발전사가 질 적자를 한전이 떠안는 구조다. 신재생에너지의 대표적 특징이자 장점인 분산전원(전력 소비지에 소규모로 분산해 배치한 발전 설비)으로서의 유용성, 국가 전력망에서 분리된 마이크로그리드, 수요에 스마트하게 대응하는 전력시장 메커니즘 등은 한전의 전력 독점 수매, 독점 판매 체계에서 무력화된다.
전력시장을 경쟁 체제로 개편하자거나 한전을 분할하자는 주장 등은 너무 과격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기요금을 산업 정책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분산발전 생태계와 시장을 제대로 형성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소규모 발전사업자 전용의 전력 입찰시장을 만들고 자가 발전 전력을 가까운 수요지나 전기차 충전소에 한전 전력망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공급·판매할 수 있도록 하면 ‘발전의 틈새시장’이 열릴 것이다.
온갖 비용을 깔때기처럼 한데 모으지 말고 아주 작은 ‘전력 독립지’를 허용해 비용을 분산하면서도 충분한 인센티브가 제공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한전도 살리고, 탄소 배출도 줄이고, 산업도 살리는 길이 있을 것이다. 투자는 물론 전통 에너지 산업 부문의 탈탄소 전환 노력 등 민간 부문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NDC 달성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