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서 식품잡화점을 운영하며 특별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한국 출신 재야 미술가 토머스 공(한국 이름 공태권)이 1일 73세로 별세했다. 3일(현지 시간) 지역 유력지인 시카고트리뷴은 ‘잡화점 주인이자 시카고의 컬트 아티스트 토머스 공, 73세로 숨지다’는 제목으로 장문의 부고를 실어 그의 예술가 정신을 기렸다.
신문에 따르면 공씨는 17년 전 식품잡화점 ‘킴스 코너 푸드’를 인수한 후 옛 주인의 성을 딴 가게 이름을 그대로 뒀다. 대신 삭막한 매장에 변화를 줄 수 없을까 고민했다. 칙칙한 상자와 차가운 금속 선반을 가리기 위해 색종이를 자르고 접어 붙이기 시작한 것이 그의 창작 활동의 시작이었다. 빈 병으로 첨탑을, 검정 비닐 봉투로 벽 장식을, 포장 박스로 조형물을 만들어 선반과 음료 냉장고, 창문 등을 장식해 나갔고 그의 잡화점은 어느 새 갤러리로 변했다. 매장 안팎을 수놓은 공 씨의 작품 활동은 지역 거주민들에 컬트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 한 번 받지 않은 그의 작품에 점차 전문가들도 환호하기 시작했다. 시카고 지역 갤러리를 시작으로 세인트루이스, 포틀랜드, 플로리다 탬파 등 미국 전역에서 전시가 열렸고 일본 도쿄, 호주 멜버른, 독일 쾰른 등 해외 갤러리도 그를 초청했다.
그럼에도 그는 소박하고 근면한 일상을 이어갔다. 시카고트리뷴은 “공씨는 하루 12시간, 주 7일 가게 문을 열고 일했다”며 “시카고 디자인 박물관에서 그의 단독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가게를 비울 수 없다’며 개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어 “킴스 매장에 가면 늘 카운터 앞에 선 백발의 그를 볼 수 있었다”며 “그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가위·풀·테이프 등을 옆에 놓고 새로운 작품 만들기에 몰두해있었다”고 덧붙였다.
2014년 공 씨에게 처음 전시 기회를 줬던 ‘로먼 수전 갤러리’의 네이선 스미스 관장은 “그는 명상 또는 기도를 하듯 작업을 했다. 자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고 기억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시카고 디자인 박물관에서 ‘우리 매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는 제목으로 공씨의 단독 전시회를 열었던 시카고 ‘062 갤러리’의 관장 S.Y.림씨도 “062 갤러리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도쿄·타이베이 미술제에도 가져가 작품 판매 수익금 전액을 그에게 지급했지만 그는 작품당 20달러(약 2만 6000원) 이상을 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공씨는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자재로 하루에 최소 10개 이상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전해졌다. 작품에 가장 많이 사용한 문구는 “행복하세요(Be Happy)”였다. 언젠가부터 매장 뒤편에 작은 갤러리를 조성하고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도 했다.
고인은 1950년 황해도 태생으로 부친이 사망한 후 어머니, 다섯 누이와 함께 1953년 남한으로 이주했다. 1972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다 1977년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누이의 초청으로 이민을 했다. 공씨는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은 일은 없지만 영문학도일 당시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극작가 아서 밀러를 좋아했다고 트리뷴은 덧붙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샌디와 아들, 다섯 손주, 다섯 누나와 조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