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빌라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 고양시의 한 대단지 빌라에서도 ‘깡통 전세’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 단지 내 수십여 채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분양 대행사 직원들이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대신 이자만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이른바 ‘무자본 갭 투자’를 해 자본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
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고양시 일산동구 A빌라 단지는 200여 가구 규모로 2021년 준공됐다. 당시 2억 3000만 원대에 분양됐던 이 빌라는 잔여분에 대해서는 최대 2000만 원을 더 높게 전세 세입자를 모집했다. 통상적으로 전세액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면 ‘깡통 전세’로 본다. 하지만 이 당시 전국적으로 집값은 물론 전셋값까지 가파르게 오르면서 아파트를 구하지 못한 신혼부부와 젊은 층이 비교적 저렴하고 다양한 옵션에 신축이라는 장점을 갖춘 해당 빌라로 몰렸다.
이 과정에서 분양 대행사 직원들은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또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세를 넓혀갔다. 이러는 사이 전세 만기 시점이 다가왔고 턱없이 떨어진 전셋값에 일부 임차인들은 전세 만기 이후에도 보증금에 대한 이자만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차인들도 온라인 단체 대화방을 통해 상황을 살피고는 있지만 적극적인 대응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아직 전세 기간이 남아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면 손해 없이 이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대행사 직원들이 임차인을 찾아가 보증금이 마련될 때까지 이자로 매달 100만 원을 준다며 재계약을 유도하고 있다”며 “임차인들도 피해 없이 나갈 수 있다는 기대로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만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 임차인이 많아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전세사기 사건이 터진 뒤 전세는커녕 월세도 찾는 사람이 없다”며 “그나마 최근 1억 5000만 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3월 단지 내 51㎡(15평)짜리 주택은 감정가 2억 3000만 원에 경매가 진행돼 1억 7200만 원에 낙찰됐다. 낙찰가로만 따져보면 2021년 전세 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130%가 넘는다.
당시 분양을 담당했던 임대업자는 “집값보다 높은 전세금 탓에 다른 세입자를 구한다 해도 수천만 원 이상 차이 나는 보증금을 어떻게 돌려주겠느냐”며 “컨설팅 직원 4명이 수십 채를 보유하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했다. 고양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