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동안 ‘혼술’, ‘홈술’ 트렌드로 자리잡은 와인과 위스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국내 와인 시장 규모는 2020년 8000억 원대에서 지난해 2조 원대로 성장했고 위스키 수입액은 2020년 1억 3246만 달러에서 지난해 2억 6630달러로 2배로 덩치를 키웠다. 팬데믹에도 두 품목의 열풍이 계속되면서 국내 주류·유통업체들의 각축전도 심화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1세대 전통 와인 수입업체들은 코로나19 동안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1000억 원을 돌파하며 급성장했다. 금양인터내셔날은 2021년 매출액 1345억 원, 지난해 1414억 원을 기록했다. 아영FBC는 2021년 1010억 원, 지난해 1241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두 업체는 2020년 매출액 917억 원, 693억 원에서 1년 새 46.7%, 45.7%의 신장률을 보이며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음주 문화 덕을 톡톡히 봤다.
국내 와인 시장 규모는 2020년 8000억 원대에서 2021년 1조 5000억 원대로 껑충 뛰었는데 업계에서는 지난해 2조 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 수입업체들은 이처럼 판이 커진 시장에 당장은 덩치를 키웠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시장 규모가 체급을 수단계 뛰어넘을 만큼 커지면서 대규모 자본력과 유통력을 앞세운 대기업들도 시장 점유율 확대에 열을 올려서다.
전통 와인 수입업체 금양인터내셔널은 2004 칠레산 ‘1865 와인’ 등 히트 상품을 선보이며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2017년 신세계L&B에 자리를 내준 뒤, 두 회사의 매출액 차이는 2017년 13억 원에서 지난해 6490억 원까지 체급이 벌어졌다. 신세계L&B의 매출액은 2020년 1454억 원을 기록한 뒤 다음해 1999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지난해에는 2063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신세계L&B는 그룹사의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대규모 유통 네트워크를 이용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국내 와인 시장이 ‘플라이급’에서 ‘헤비급’ 매치로 성장하면서 대기업들도 와인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이마트는 4일 스타필드 하남에 국내 최대 규모의 와인 전문 매장을 오픈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와이너리 세이퍼 빈야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하이트진로는 4일 이탈리아 와이너리 ‘자시&마르케사니’ 와인 4종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27일 와인 애호가들의 성지로 꼽히는 피에몬테 지역의 고품질 와인 ‘도시오’의 와인 6종을 출시하며 와인 사업에 페달을 밟고 있다.
롯데그룹도 와인 사업에 다시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롯데칠성음료는 1977년 국내 최장수 와인 ‘마주앙’을 출시한 이래 10년여 전까지만 해도 와인 사업에 힘써왔다. 그러나 맥주와 소주 사업에 집중하면서 점차 경쟁력을 잃었다. 하지만 최근 와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와인 직영숍 ‘와인온’을 열었다. 롯데쇼핑도 롯데마트 내 ‘보틀벙커’를 오픈하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3월 비노에이치라는 와인 수입 법인을 설립한 후 경기도 남양주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에 국내 최대 규모 와인전문 매장 ‘와인리스트’를 열었다. 이들 유통 공룡들은 와인 판매를 넘어 수입, 유통까지 직접 나서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시장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와인뿐만이 아니다. 위스키 수입액 역시 2019년 1억 9836만 달러에서, 2020년 1억 3246만 달러, 2021년 1억 7534만 달러, 2022년 2억 6630달러로 급성장 중이다. 3년 새 2배가량 성장했다. 올 1분기에는 위스키 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78.2%나 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위스키 수입은 2007년을 정점으로 감소하다, 코로나19 기간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하이볼’ 열풍과 더불어 반전이 일어났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한정판 출시에도 ‘오픈런’이 빚어지고 술집 거리 곳곳에 위스키 바가 생겨날 정도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수입산이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해왔다. 최근 들어서야 쓰리소사이어티스와 김창수위스키가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를 선보이며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스터 디스틸러와 3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기원’을 내놨고 김창수위스키의 김창수 대표는 10여년의 준비 끝에 숙성 연도 3년짜리 제품 정식 출시를 내년 앞두고 있다.
위스키 열풍이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계속되면서 주류 대기업들도 위스키 제조에 뛰어들고 있다. 위스키 열기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한동안은 지속될 거란 판단에서다. 롯데칠성음료는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감귤공장 부지에 증류 시설을 짓기 위한 인허가 작업을 마치고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검토 중이다. 위스키 등 증류주를 생산하겠다는 목적과 함께 위스키의 역사와 종류, 제조 공정 등을 소개하는 견학관 등도 계획에 담겼다.
신세계L&B도 지난해 위스키 생산을 공식화한 뒤 제주에 위스키 등을 위한 증류소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W비즈니스팀을 신설하고 한국식품연구원과 위스키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국산 참나무를 이용한 오크 목통을 제조해 차별화한 국산 위스키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제주소주의 전신인 신세계L&B의 제주 공장이 유력한 증류소 후보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