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가장 두렵고 노골적인 두 투자자 사이 전투가 시작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행동주의 공매도 세력인 힌덴버그 리서치가 지난 2일(이하 현지 시간) 아이칸엔터프라이즈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는 소식을 보도하며 이 같이 논평했다. 힌덴버그는 2020년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사기 행각을 폭로한 것을 시작으로 명성을 얻은 곳인데, 이번 보고서가 관심을 끄는 건 타깃이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이기 때문이다. ‘월가 대표 저승사자’로서 항상 기업을 향한 공격자로 군림하던 아이컨이 되레 수비자 포지션에 서게 된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5일 현재 아이컨엔터프라이즈 주가는 힌덴버그가 이 회사에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 전날인 1일 종가에 비해 24.38%나 하락했다. 특히 2~4일 사흘 동안 주가 폭락으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75억달러나 증발했다. 회사 측이 5일 1분기 배당 규모를 종전 수준인 주당 2달러로 유지한다고 밝히면서 주가도 26.7% 반등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아이컨엔터프라이즈는 아이컨이 지분 85%를 보유한 투자 전문 지주회사다. 그런 아이컨에게 도전하는 힌덴버그의 보고서는 아이컨엔터프라이즈 주가가 과대평가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힌덴버그는 보고서에서 아이컨엔터프라이즈가 “보유 자산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며 “배당금을 과다 지급하기 위해 폰지 사기와 같은 형태로 경제적 구조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기업가치, 현금흐름, 부채 잔액 등을 따졌을 때 현재 주가를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힌덴버그는 이 회사 주가가 75% 이상 과대평가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아이컨엔터프라이즈가 순자산가치(NAV) 대비 218% 높은 프리미엄에 거래되고 있으며, 이는 모든 비교 대상보다 극단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빌 애크먼의 퍼싱스퀘어, 댄 로엡의 서드포인트 등 다른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운영하는 투자사들과 비교해도 너무 높다는 주장이다. 또한 아이컨엔터프라이즈가 15.9%라는 높은 배당수익률로 투자자들을 현혹한다는 주장도 폈다. 힌덴부르크는 “미국 대형주 가운데 가장 높은 배당수익률로, 이를 달성하는 수단이 합법적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신규 투자자에게서 받은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주고 있다. 폰지사기와 같은 경제구조”라고 지적했다.
아이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이컨엔터프라이즈 측은 성명을 내 “힌덴부르크가 아이칸엔터프라이즈의 장기 주주들을 희생시키면서 공매도 포지션에서 이익을 내려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4일에는 배당금 규모도 현 수준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아이컨은 “힌덴버그의 자기 본위적 보고서로 인한 시장 혼란이 아이컨엔터프라이즈의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장기 투자자들에게 안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이컨에 대해 “근 반세기 동안 기업 약탈자이자 행동주의 투자자로서 월가를 흔들었으며, 대기업도 그의 요구에 굴복하고 사업전략을 바꿨다”고 소개했다. 그는 델, 허벌라이프, 코카콜라 등 숱한 기업들의 지분을 취득한 후 주주제안을 반복하는 식으로 경영에 개입해 많은 돈을 벌어 왔으며,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투자자로 손꼽힌다. 애플조차 2010년대 초반 아이컨의 주주제안에 자사주매입, 배당금 확대 등 주가 부양을 시도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 상대하는 힌덴버그도 만만치 않은 행동주의 투자자다. 이들은 2020년 전기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에 대해 그간 성과들이 모두 사기라고 비판했고, 이후 니콜라의 행각이 모두 사기로 판명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올해 들어서도 인도 최대 재벌 고탐 아다니가 이끄는 대기업 아다니그룹이 주가 조작과 회계부정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보고서 영향으로 아다니그룹 시가총액이 약 1100억달러나 줄었다고 전했다. 또한 트위터 공동창업자 잭 도시가 만든 모바일 결제 업체 블록에 대해서도 주력 사업인 간편결제 서비스 ‘캐시앱’ 이용자 수를 부풀렸고 고객에게 약탈적 수수료를 부과했다고 비판했으며, 주가가 폭락했다.
이 모습이 진풍경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2013년 생방송 중 허벌라이브 가치를 두고 아이컨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애크먼은 트위터에 힌덴버그 보고서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며 치켜세웠다. 그는 “이 짧은 보고서에 생사의 순환이라는 개념을 강화하는 업보의 특성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