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45세의 나이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이나 수감 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물론 아들이 사망했을 때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복수를 꿈꿨을 것이다.
오랜 수형 생활에서 풀려난 그는 대통령이 됐다. 복수의 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실제로 그는 과거의 일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는 복수의 칼을 들이대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서하되 잊지는 않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과거의 인권침해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 구성했던 기구의 명칭은 ‘진실과화해위원회’였다.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주되, 복수가 아닌 미래를 위해 화해를 지향한다는 것이 그 단체의 설립 목적이었다. 덕분에 남아공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화합을 이룰 수 있었다.
인류가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이라는 규율을 만든 지 4000여 년이 지났다. 기원전 2000년께 처음으로 제정된 함무라비법전이 바로 그 시작이다. 함무라비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이성도 발달해 감정을 잘 통제하게 됐다고 믿고 있다. 보복과 화해 등의 도덕관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정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최근 반가운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으로 마운드에 서지 못했던 한 야구 선수가 드디어 마운드에 서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참회와 반성의 뜻을 피해자 측에 전해 드디어 화해를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잘못으로 미래를 담보 잡혀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잊어줄 때가 됐는데 언제까지 과거의 일로 발목을 잡을 것이냐는 의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필요조건이 있다. 첫째는 과거의 일을 진실대로 밝히는 것이고 둘째는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용서하되 잊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화해할 수 있다. 그래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