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처럼 살아도 남보다 못해"…'인구 변화' 못 따라가는 '법적 가족'

[2023 新가족 리포트] <1·거부할 수 없는 변화>
비친족 가구·1인 가구 지속적으로 증가
'법적 가족'은 여전히 혈연·혼인 중심
'규범 밖 가구', 전체 가구의 40% 육박
"생활동반자법,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 보호"
"100만 비혈연 동거인, 사회보장제도 배제"

가정의 달을 맞은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놀이공원이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같이 사는 친구가 며칠 연락이 안돼서 정말 걱정을 했거든요. 전화를 한참 하다 보니, 형사가 전화를 받았어요. ‘원래는 말해주면 안되는데’라면서 친구가 죽었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혈연 관계 아니면 알려줄 수 없지만 알려준 거라고. 가족처럼 살았는데 정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더라고요.”


“애인이 이전 남편과의 결혼에서 낳은 아이와 현재 함께 살고 있어요. 제 아이처럼 육아를 같이 하고 있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이혼한 전 남편을 부르는 상황이 발생하네요. 저는 같이 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할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합니다.”


혼인신고를 한 아빠와 엄마, 자녀가 같이 사는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은 해체되고 있다. 우리나라 법 체계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사는 경우를 ‘정상 가족’으로 규정하고 이를 장려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와 애인·친구와 같이 사는 비친족가구를 합하면 전체 가구의 4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가 새로운 형태의 가구와 가족 구성원들을 ‘규범 밖 가구’로만 규정하고 이를 국가 제도의 울타리로 보호하지 않으면서 정작 ‘비정상’으로 치부 되는 40%의 구성원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 주거·돌봄·출산·양육 등 대부분의 권리와 의무가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를 기준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에 발 맞춰 여러 사회적 관계를 차별없이 인정하고 사회보장제도를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출산율 반등을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가족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요구는 수년 간 이어져 왔다. 민법 779조는 가족을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관계’로 정의한다. 이에 한부모, 비혼 동거, 동성 부부, 주거 공동체 등 가족 범위 밖에 있는 관계들은 사회보장 등 공공 서비스의 보호에서 배제되고 있다. 수술과 같은 의료적 위급 상황에서 가족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보호자의 역할이 제한된다. 또, 친밀한 관계여도 사망 이후 ‘장례주관자’가 될 수는 없는 상황, 입양아에 대한 차별적 시선으로 인해 입양을 고민하게 되는 경우 등 좁기만한 가족 개념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2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은 생활을 함께하는 동반자에게 동거, 부양, 협조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서로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배경에서 출발한 법안이다.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게 되더라도 신분 변동은 없고 상대방의 가족과 인척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관계의 해소는 두 사람이 합의하거나 한 쪽이 해소를 원할 경우 가능해 이혼에 비해 간소하다. 용 의원은 “국가의 여러 제도들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출산이나 가족을 형성하는 일도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저출산 인구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이달 중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계획하고 있다. 장 의원 측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동거’ 조건을 꼭 포함시키지 않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생활동반자법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소수자 보호’ 같은 특정 구호로 치부하기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는 이미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비친족 가구는 47만 2660가구로 집계됐다. 비친족 가구는 2015년 21만 4421가구였으나 이후 7년 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부터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이 된 1인가구도 2021년 기준 전체 가구의 33.4%를 차지한다. 2050년에는 40%에 육박할 전망이다. 비혼 동거 비중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향후 결혼을 하고 싶다고 답한 이들 중 ‘결혼 전 동거 의향이 있다’는 48.5%, ‘바로 법적으로 결혼할 생각’이라고 답한 비율은 51.5%로 결혼 의향이 있는 이들의 절반 가량이 동거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향후 결혼 의향이 없는 경우에도 ‘동거 의향이 있다’가 16.8%, ‘동거 의향이 매우 많다’가 0.5%를 기록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가 2022년 실시한 ‘가족실태조사 부가 연구’에 따르면 동거하는 이유로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라고 답한 이들이 17.3%로 가장 많아 결혼이 아닌 생활 형태가 점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한국은 현재까지 비친족 동거 가구에 대한 명확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비친족 동거 가구는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지난 2021년 9월 30일부터 시행된 서울시 1인가구 조례에는 ‘사회적 가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혈연이나 혼인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뜻하는 넓은 개념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현재 우리나라 법률에서는 법률혼과 혈연으로 인한 가족만 인정하며 사회보장제도는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가족의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사회보장제도에서 다 배제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혈연 동거 가구원의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는데도 제도적 장치가 없는 탓에 가족 관계를 맺지 않고 서로 보살피며 돌보는 가구가 서로에 대해 보호자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없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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