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비친족 760만 가구 '비정상' 꼬리표…주거·양육 앞에선 '가족 아닌 남'

[2023 新가족 리포트] <1>인구변화 못 품는 '법적가족'
현행법상 혈연·혼인만 가족 인정
한 부모·비혼·동성부부 등은 제외
수술보호자·장례 주관자 못 나서
가족범위 넓힌 생활동반자법 발의
서울시 '사회적가족' 조례에 포함
인구위기 벗어나려면 법개정 필요

가정의 달을 맞은 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놀이공원이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같이 사는 친구가 며칠 연락이 안 돼 정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형사와 연락이 닿았어요. ‘원래는 말해주면 안 되는데’라면서 친구가 죽었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혈연관계 아니면 알려줄 수 없지만 알려준 거라고. 가족처럼 살았는데 정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더라고요.”


“애인이 전 남편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제 아이처럼 육아를 같이 하고 있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이혼한 전 남편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정작 중요할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할 뿐입니다.”


우리나라 법 체계는 혼인과 혈연으로 엮인 부모와 자녀가 같이 사는 경우를 ‘정상 가족’으로 규정하고 이를 장려한다. 현실은 다르다.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은 이미 해체되고 있다. 그 빈자리를 혼자 사는 1인 가구와 애인·친구 등 비친족과 같이 사는 가구가 빠르게 채워 나가는 중이다. 2015년 21만 4421가구에 그쳤던 비친족 가구는 2021년 47만 2660가구까지 늘어났다. 2015년부터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주된 유형이 된 1인 가구도 716만 가구에 달한다. 전체 2145 만 가구 중 35% 이상이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서 벗어난 곳들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단순히 ‘소수자 보호’ 같은 특정 구호로 치부하기는 힘든 이유다.


비혼 동거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향후 결혼을 하고 싶다고 답한 이들 중 48.5%가 ‘결혼 전 동거 의향이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결혼 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동거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17%를 넘어섰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가족 실태 조사 부가 연구’에서도 동거 이유로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라고 답한 이들이 17.3%로 가장 많았다. 결혼 없는 생활 형태가 점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비친족 동거 가구에 대한 명확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새로운 형태의 가구와 가족 구성원들은 여전히 ‘비정상’으로 방치되고 있다. 주거·돌봄·출산·양육 등 대부분의 권리와 의무는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에게만 주어질 뿐 이들에게는 남의 일이다. 새로운 가족 형태가 늘어나는 만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인정하고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안 발의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법적 가족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요구는 2014년에도 있었다. 핵심은 민법 779조 개정. 이 조항은 ‘가족을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관계’로 정의한다. 사회보장 등 각종 공공 서비스는 이를 근거로 이뤄진다. 해당 사항이 없는 한부모, 비혼 동거, 동성 부부, 주거 공동체 등은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다. 수술과 같은 의료적 위급 상황에서도 이들은 보호자가 될 수 없고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사망 이후 ‘장례 주관자’로 나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달 2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을 함께하는 동반자에게 동거·부양·협조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서로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생활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되더라도 신분 변동은 없고 상대방의 가족과 인척 관계 역시 형성되지 않는다. 관계의 해소는 두 사람이 합의하거나 한쪽이 해소를 원할 경우 가능해 이혼에 비해 간소하다.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인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가족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출산휴가나 돌봄휴가를 낼 수 없다면 비친족 가구가 과연 아이 가질 생각을 하겠냐는 것이다. 용 의원은 “국가의 여러 제도들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출산이나 가족을 형성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저출산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이달 중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계획하고 있다. 장 의원 측은 생활 동반자 관계에 ‘동거’ 조건을 꼭 포함시키지 않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생활동반자법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2021년 9월 30일부터 시행된 서울시 1인 가구 조례에는 ‘사회적 가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뤄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취침 등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뜻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현재 우리나라 법률에서는 법률혼과 혈연으로 인한 가족만 인정하며 사회보장제도는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가족의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사회보장제도에서 다 배제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혈연 동거 가구원의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는데도 제도적 장치가 없는 탓에 가족 관계를 맺지 않고 서로 보살피며 돌보는 가구가 서로에 대해 보호자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없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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