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주말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지난 6일 전파를 탄 ‘닥터 차정숙’ 7회 방송분 중 크론병을 앓는 예비 사위에게 예비 장인이 “어떻게 이런 못된 병을 숨기고 결혼할 수가 있냐, 내 딸 인생을 망쳐도 분수가 있지”라며 비난하는 장면이다. 한술 더 떠 예비 장모는 “이 병 유전도 된다면서, 이 결혼 자네가 포기해줘”라고도 쏘아 붙였다. 이후 수술에 실패한 예비 사위는 삶을 비관하다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 한다.
해당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엔 항의글이 수백 건 폭주했다. 누리꾼들은 “크론병은 몹쓸 병도, 유전병도 아니다” “숨겨야 할 병도 아닌데 왜 이런 식으로 매도하나”, “크론병을 앓는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환자들 두 번 죽이는 못된 드라마” “사과하고 방송분 삭제하라”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방송분과 관련해 9일 오전 9시까지 총 43건의 민원이 접수됐으며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에 이르기까지 소화기관 전체에 걸쳐 모든 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과거 가수 윤종신과 코미디언 출신 가수 영기 등 연예인들이 앓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일반에도 널리 알려졌다. 윤종신은 과거 방송에서 "엄청 잘 먹는 편인데 1990년대 사진을 보면 굉장히 말랐다. 크론병 때문이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크론병의 연관검색어로 뜰 만큼 투병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가수 영기도 지난해 방송을 통해 크론병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원래 잘 뛰어다녔는데 크론병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했다. 체력이 안 돌아오더라. 2분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했다. 소장 12cm를 절제하는 수술도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소장은 6m라 괜찮다고 하셨다. 지금은 다 낫고 괜찮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아직까지 크론병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 발병한 경우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원인일 가능성도 거론되는데, 특히 장내 환경 변화로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을 많이 생산하는 미생물이 증가해 면역이 과활성화되면서 반복적, 만성적으로 장에 염증이 발생한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장에 있는 다양한 면역 세포가 미생물, 세균에 대해 과도한 면역 반응을 보일 때 염증성 장 질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크론병은 소아청소년에서 발병률이 높기 때문에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크론병 진료 인원의 10.6%인 2721명이 20세 미만이었다. 2016년과 비교할 경우 7.3% 증가한 수치다.
크론병은 어린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보호자가 질환에 대한 정확한 증상을 알아야 빠른 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윤종신은 방송에서 "이미 중학교 때 크론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10대부터 30대까지 살았다"며 "미리 알았다면 건강하게 살았을 텐데, 2006년에 확진을 받고 수술을 해서 소장 60cm를 잘라서 이어 붙였다. 염증이 3곳에 있었다고 하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영유아가 특별한 원인 없이 복통을 호소하거나 설사를 하면 유당 불내증 등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증상이 지속 반복된다면 소아 크론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그만큼 다른 병으로 오인할 만큼 증상이 흔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크론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잦은 복통, 설사 등으로 유당 불내증, 과민성 대장 증후군, 장염 등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낸다. 항문 주위의 염증, 치루 등을 동반하기도 하며 이외에도 성장부전, 관절통, 피부 병변 등을 보일 수 있다.
크론병은 만성인 동시에 난치 질병이다. 하지만 빠른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이어간다면 합병증에 대한 걱정 없이 정상적인 성장은 물론 일반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박소원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는 "크론병이 있으면 식욕 저하가 일어나는 동시에 영양 흡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성장과 직결되고 유병기간이 길어질수록 합병증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빠른 진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론병 치료에는 항염증제, 면역조절제, 스테로이드제와 같은 약물 치료가 쓰인다. 최근에는 주사 제형의 생물학적제제가 이용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치료 효과가 높아졌다. 생물학적 제제는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의 작용을 막아 염증을 줄여주고 장 점막 치유 효과를 보인다. 이러한 생물학적제제를 초기부터 충분한 기간 사용하면 약물치료 중단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김미진·최연호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연구팀은 올해 초 소아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환자에서 생물학 제제를 초기부터 충분한 기간 사용 후 약물을 끊었을 때 점막치유를 이룬 관해에 들어간 환자에서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단핵구 비율이 병의 재발에 관련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단핵구는 염증성 장질환의 면역 반응에서 상부의 염증 과정에 관여한다.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은 깊은 관해(deep remission)를 확인하고 생물학 제제를 중단하면 재발할 수 있는데, 이번 연구는 생물학 제제 중단 후 재발을 경험한 환자에서 단핵구 비율이 ‘재발 예측 인자’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연구팀은 지난 2018년에도 생물학 제제인 ‘인플릭시맵의 혈중 농도가 낮을수록 단약 후 재발이 낮다’는 것을 보고한 바 있다.
김미진 교수는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중증도 이상의 염증성 장질환 환자에서 초기부터 톱-다운 치료 전략을 사용하여 빠르게 깊은 관해 상태에 도달한 뒤 단약을 시도하고 있다"며 "가까운 미래에 크론병과 같은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이 완치에 도전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