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사진) 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27년 전의 성폭행 의혹과 관련한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 별개의 ‘성추문 입막음 의혹’ 형사 기소 이후 줄줄이 성비위 사건이 유권자들의 뇌리에 각인되며 험난한 대선 가도가 예상된다.
뉴욕남부연방지방법원은 이날 유명 패션 칼럼니스트 출신인 E 진 캐럴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총 500만 달러(약 66억 원)의 피해보상 및 징벌적 배상을 명령했다. 그는 수많은 성적 추문에 휘말려왔지만 법적 책임이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1996년 원고인 캐럴을 성추행했으며 이후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과정에서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2019년 캐럴은 과거 백화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해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처음 폭로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시효가 만료된 사안이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향해 “책을 많이 팔기 위한 사기” “내 스타일이 아니다” “미치광이” 등의 조롱을 일삼은 결과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됐다. 게다가 지난해 뉴욕주의회가 성범죄의 시효 적용을 1년간 중단하는 특별법을 시행하며 민사 기소도 가능해졌다. 이에 지난달 25일 시작된 소송 절차는 이날 배심원단이 3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그의 법률적 책임을 인정하며 이례적으로 신속히 마무리됐다.
이번 평결로 내년 대권 도전을 선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재차 부각됐다. 그는 3월에도 과거 포르노 배우와의 성관계 사실을 돈으로 입막음하기 위해 2016년 대선 직전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형사 기소된 상태다. 이 밖에 국가 기밀문서 불법 유출, 탈세 의혹 등과 관련해 뉴욕·DC·조지아·워싱턴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CNN은 “8월 당내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를 앞두고 법적 문제가 점점 늘며 그의 지지율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는 애초에 그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 뿐더러 앞선 형사 기소 결정도 되레 지지층을 결집시킨 만큼 배상 평결이 얼마나 큰 악재일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장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평결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마녀사냥의 연속”이라고 반발했다. 그의 변호인 측은 차기 대선 출마에 차질을 빚을 것 같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항소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