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버린 부모도 재산범죄서 '면죄'…70년 묵은 '친족상도례' 개정안 국회서 낮잠만

[2023 新가족 리포트]<2·가족 문턱 못넘는 法>
핵가족 가속화에 '전통적 친족' 변화
국민 45.8%가 "3촌까지만 친족"
고정적인 가족 개념만 전제한 채
면죄부 준 '친족상도례' 개정 필요
국회 수차례 개정 시도 모두 무산돼
법무장관도 관련법 개정 필요 언급
"해악 범죄 대상 제외 필요" 목소리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 문구완구시장을 찾은 어린이가 부모님과 장난감을 구매한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아내가 상간남을 위해 제 돈 수천만 원을 빼돌렸습니다. 신고를 하려 했지만 가족이라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도둑인데, 우리나라 법은 도둑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합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큰 형이 아버지 돈을 수차례 빼돌려 유흥에 탕진했습니다. 원래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가정은 풍비박산 나고 아버지는 형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습니다. 돈의 일부라도 돌려받기 위해 형을 신고하려 했지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 법은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족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1970년 4.53명에 이르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급감하며 점차 핵가족화됐다. 1970년 18.8%였던 직계가족 비율은 2015년 5.3%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핵가족은 71.5%에서 81.7%로 확대됐다. 또 친족 간 교류가 점차 줄어들며 국민들이 친족이라고 여기는 범위도 축소됐다. 4촌까지를 친족범위로 생각하는 국민은 2010년 45.8%에서 2021년 32.6%로 줄었다. 해당 조사에서 가장 많은 국민들이 친족이라고 생각하는 범위는 3촌까지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법의 개입을 폭넓게 금지시켰던 한국의 법조항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8촌 내 혈족이나 4촌 내 인척·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죄·사기죄 등의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특례인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에 대한 개선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마련된 친족상도례의 연원은 로마법의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라는 선언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 가족 개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권위를 가진 웃어른을 중심으로 가정 내 불화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는 의미를 전제한다. 다만 친족상도례가 제정된 이후 70여 년이 지난 현재, 법은 현실과 유리됐다. ‘웃어른’은 점차 사라졌고 개인의 욕심으로 가정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쉽게 목격된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노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 가해자의 77.5%,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19%가 피해자의 친족에 의해 발생했다. 친족상도례가 과거에 정립된 가족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친족상도례는 형법 제328조 ‘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조항을 기본으로 한다. 1항은 가해자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및 그 배우자인 경우 형을 면제하며, 2항은 그 외 친족 간의 범죄의 경우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친고죄)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친족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다. 본래 해당 조항은 권리방해행사죄에 한해 적용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형법 제344조, 제354조, 제361조, 제365조에도 준용돼 절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장물죄 등 일반적인 재산범죄에도 적용된다. 또 특정경제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폭력행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특별법 위반도 대상이다.


법조계에서는 친족상도례 조항이 획일적이고 일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피해의 중대함·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의 구체적 관계·피해자의 처벌의사 등을 모두 고려하지 않고 사실상 일률적인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다. 자식을 버린 부모도,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별거 중인 배우자도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처벌대상에서 면제된다. 민법상 가족에 해당하지 않는 직계혈족 배우자(비동거), 배우자의 직계혈족(비동거) 등도 친족상도례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검사의 기소 권한, 법관의 양형 재량도 개입되지 못한다.


형법 제328조 2항에 해당되는 친고죄 조항도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친고죄의 경우 피해자가 범인을 인지한 이후 6개월 이내에 고소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시기를 놓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해자가 친척이라는 이유로 용서를 구하거나 손실된 재산을 갚아 주겠다며 고소를 미뤄달라고 호소해 기간을 넘기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해당 범죄를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로 전환해 고소기간 제한을 없애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금 사회에서는 (친족상도례가) 예전 개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친족상도례의 적용대상을 축소·폐지하려는 개정 시도는 번번히 무산돼 왔다. 지난 14대 국회 때에는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의 적용 여부를 판사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임의적 형면제)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으며 19대 국회에서도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재산범죄를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개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최근인 2021년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족상도례 규정을 전면 폐지하는 법안을, 이병훈 민주당 의원은 사기와 공갈, 횡령과 배임 범죄를 친족상도례 대상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냈지만 사실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편 친족상도례가 폐지될 경우 법·제도상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전히 공권력이 가정사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여론도 존재하는 데다, 오랜 기간 시행된 제도라는 것이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2012년에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져선 안 된다”며 친족상도례 규정을 합헌 결정한 바 있다.


이에 제도 개선을 위한 절충안도 제시된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중처벌 되는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사기·공갈 및 횡령·배임의 죄’와 ‘5명 이상이 공동하여 상습적으로 범한 절도의 죄’ 등에 대해서 친족상도례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한 의원은 “친족상도례 법이 오랜 기간 적용돼 왔을 뿐 아니라 사법부가 이를 인정해오고 있기 때문에 폐지를 포함한 법 개정에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일부 해악 범죄부터라도 친족상도례 대상에서 제외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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