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3600만 건가량 이뤄진 비대면 진료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공중 보건 위기 상황을 해제하고 우리 방역 당국도 다음 달 1일부터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하향 조정함에 따라 지난 3년여간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는 불법으로 전락한다.
정부는 시범 사업으로 비대면 진료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사업 방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간호법 등 보건의료 현안과 맞물려 의약계 등 직역 단체의 반발에 직면한 점도 비대면 진료가 중단될 상황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보건 안보 위기 속에서 싹을 틔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사업 중단까지 고려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붕괴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11일 “코로나19의 위험은 끝나지 않았지만 확진자 발생 감소, 의료 대응 역량 향상, 높은 면역 수준을 고려해 장기적인 관리 단계로 전환할 준비가 됐다”며 “위기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방역 당국은 2020년 2월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했다. 이번 발표는 1173일 만에 이뤄진 조치다. 방역 당국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고시 개정 등을 마친 후 다음 달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는 다음 달 1일부터 불법이 된다. ‘감염병 관리법’에 따라 비대면 진료는 심각 단계에서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대면 종료 중단 이전부터 제도화를 추진했으나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시범 사업을 통해 비대면 진료에 호흡기를 달겠다고 밝혔지만 비대면 진료의 대상·범위·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 실장은 시범 사업에 대해 “기본적인 방향은 갖고 있다”며 “전문가나 관계 기관, 여야 협의를 거쳐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의료계와 사용자 간 교두보 역할을 했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현재 상황에 대해 “초상집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비롯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후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통해 성장해왔으나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실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체킷’을 운영하고 있는 쓰리제이는 ‘앳홈 테스트’ 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내부적으로 비대면 진료에 대한 ‘피봇(사업 전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관련법 부재로 비대면 진료 사업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문제는 시범 사업이 이뤄져도 지금처럼 비대면 진료를 초진부터 허용하는 방식이 아닌 재진부터 이뤄지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면 비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우선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이용자의 불편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재진부터 허용하는 방식을 플랫폼에서 구현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다만 복지부는 재진부터 시범 사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원론적인 차원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는 것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범 사업 방안에 따라 코로나19로 활성화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플랫폼 업체들은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상황에서 투자금을 유치하고 사업을 지속해왔다. 국회와 정부 등에서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후 자금 조달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3년간 이뤄진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 등을 강조하며 시범 사업 방향 등에 대한 확정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12일 갖는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의 한 대표는 “비대면 진료에 주력하며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들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