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사장, 우리도 앞으로 전자산업을 하려고 하네.”
삼성과 LG, ‘영원한 가전 라이벌’의 시작을 알린 한 마디입니다.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 나오는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과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의 일화인데요.
1968년 봄 안양 골프장 야외 테이블에서 사돈이자 절친 관계였던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이 대화를 나누다 이 회장이 갑자기 삼성도 전자산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전포고’를 날렸습니다. 당시 삼성의 주력 사업은 설탕과 조미료, 모직 분야였고, 지금의 LG전자(066570)인 금성사는 1966년 한국 최초로 흑백 TV 생산, 라디오 개발을 이어가며 최고의 전자업체로 명성을 높이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못했던 구 회장은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이익이 보이니 사돈이 하는 사업에 끼어드는 것 아니냐고 강한 어조로 쏘아붙인 것이죠.
삼성·금성의 두 회장이 얼굴을 붉힌 뒤부터 시작된 ‘별들의 전쟁’은 50년이 넘도록 계속됐습니다. TV, 세탁기, 냉장고 등 주력 제품마다 판매량과 기술력 경쟁은 기본, 국내외 법정 공방까지 불러온 ‘진흙탕 싸움’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는데요.
오늘 ‘플러그인’에선 국내 가전 시장을 양분하고 나아가 세계시장 1위를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두 회사, 삼성과 LG의 ‘싸움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들의 신경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과거 슬로건에서부터 엿볼 수 있는데요. 1970년대 말, 금성사가 ‘기술의 상징, 금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자 1980년대 들어 삼성전자(005930)가 ‘첨단’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 ‘첨단기술의 상징, 삼성’으로 응수합니다. 여기에 질 수 없죠. 금성사는 곧바로 ‘최첨단 기술의 상징, 금성사’로 맞받아칩니다.
1970년대 흑백 TV 시장을 금성사가 압도적으로 주도하자 삼성전자는 전원을 켜면 예열 없이 화면이 바로 켜지는 ‘순간수상(瞬間受像)’ 방식 브라운관을 채택한 ‘이코노 TV’로 흥행몰이에 나섰습니다. TV 시장의 패러다임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며 1984년엔 삼성전자가 금성사를 제치고 국내 TV 시장 1위에 오르기도 했죠. 이 시기 금성사는 현재도 자주 회자되곤 하는 명 카피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컬러 TV 광고로 소비자 마음 잡기에 나섰습니다.
이 시기 양사 임원들이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전자공업진흥회 회장을 지낸 김완희 박사의 회고록 <두 개의 해를 품에 안고〉에선 컬러 TV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두 기업의 지나친 광고 경쟁을 자제시키기 위해 당시 상공부 측이 마련한 자리에서 강진구 전 삼성전자 사장과 허준구 전 금성사 사장이 멱살을 잡고 싸웠다는 일화도 등장합니다. 당시 두 기업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죠.
경쟁 열기는 기술로도 옮겨붙었습니다. 1992년 삼성전관(현 삼성SDI)과 금성사가 브라운관 TV 시장에서 특허권을 두고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양사가 특허를 공유하기로 합의하며 종결됐죠. 브라운관과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특허 8139건을 대상으로 한 이 사건은 사상 최대의 ‘크로스 라이선스’ 사례로도 꼽힙니다.
TV 전쟁의 불씨는 7년 만에 다시 타올랐습니다. 1999년 ‘완전한 평면 TV’ 타이틀을 놓고 양사의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LG전자가 1998년 말 유리 앞뒤가 모두 평평한 '플래트론’ 기술을 적용한 모니터 제품을 내놓자 삼성전자는 이에 질세라 ‘다이나플랫’ 기술을 내세웠습니다.
우리 회사 제품이 진짜 완전 평면이라는 양사의 광고전도 이어졌습니다. 착시로 인해 LG 플래트론 제품이 오목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오자 삼성은 자사 제품이 “기존 평면 모니터의 오목해 보이는 단점을 보완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대로 삼성 모니터 안쪽이 다소 휘었다는 평가가 나오자 LG 측이 광고에 “속을 확인하세요”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다소 유치하지만 치부를 찌르는 싸움 방식이 흥미롭죠? 이러한 경쟁 구도는 향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의 분쟁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