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0시께 용인 기흥구 신갈동 경기학생스포츠센터. 영상 20도 안팎의 따뜻한 봄 날씨 속에 10명의 아빠들이 초등학교 1~3학년 아들 또는 딸의 고사리손을 각각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여드름이 가신 젊은 아빠가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빠도 있었다. 지도교사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동작을 알려주면 아이들은 빠르게 익혀 흉내 내는데 어른들은 이를 어려워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이날 마련한 ‘아빠와의 만남, 아빠와 함께하는 봄’ 행사는 평소 바쁜 직장일 때문에 아이와 놀아 줄 수 없었던 아빠들에게는 그동안의 미안함을 벌충하는 시간이었다. 행사의 핵심은 달리고, 점프하며 몸을 부딪치는, 엄마는 온전히 응해줄 수 없는 체육활동이었다.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한 4층짜리 옛 기흥중학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경기학생스포츠센터는 아빠들과 아이들이 몸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이었다. 교실을 미니 농구장과 축구장으로 꾸몄다. 복도는 육상트랙으로 만들어 전력질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를 풀어놓고 여유 있게 커피 한잔하며 쉴 수 있는 키즈카페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본격적인 체육활동에 들어가자 아이들은 처음 본 또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1대1 농구와 축구를 즐기고, 아빠와 짝을 이룬 장애물 경기에서 가장 많은 땀을 흘렸다. 웃음은 림보 게임 할 때 가장 많이 터졌다. 체육활동 내내 힘센 아빠들에게 밀리던 아이들은 이 게임에서만큼은 어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유연함을 뽐냈다. 아빠들이 낮게 드리운 줄 밑을 통과하다 뱃살을 드러낸 채 주저앉으면 모두가 함박웃음이었다.
체육활동에 앞서 경기학생스포츠센터 권지훈 장학사는 아빠의 적극적인 양육이 아이 정서와 육체 발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설명했다. 이른바 ‘아빠효과’였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빠효과는 시간과 돈, 그리고 의지가 삼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천에서 온 배태일(50)씨는 “아이와 놀아주는 걸 좋아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이기에 늘 귀가가 늦다”며 “이 때문에 밤에만 제한적으로 놀아줄 수 있는데 층간소음 탓에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애하고 어쩌다 놀러 가면 공 던져주고 지켜보기만 했다”고 털어놓은 뒤 "이렇게 같이 마음껏 뛰어노니 참 좋다"고 말했다.
승주(아미초교2)군은 그런 아빠 옆에 매미처럼 딱 붙어 앉아 “더 놀고 싶다”고 졸랐다.
도연(수원 세곡초교3)군과 흠뻑 땀을 쏟은 권민호(48)씨는 “아빠와 함께하는 체험 활동이 다양해서 평소에 운동을 하는데도 땀이 많이 난다. 그래도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좋다”면서도 “시간이 짧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 조명희(44)씨 역시 “내용이 너무 좋고, 아이도 너무 좋아하는데 시간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용현(39)씨는 김다온(수원 매화초교2)양와 함께 한 시간에 큰 만족감을 내보였다.
그는 “실내라고 하지만 넓고 시설 퀄리티가 뛰어나다"며 “키즈카페보다 2~3배 낫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체험활동을 하고 싶은데 실제 애하고 움직이는 시간이 짧다 보니 좀 아쉬움이 있다"며 “이런 좋은 공간과 행사가 더 확산되도록 도교육청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초등학교 1~3학년을 위한 행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11시10분까지 약 70분 동안 진행됐다. 오후에는 초등학교 4~6학년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 했다. 짧은 시간에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선택된 행운아들이었다. 권지훈 장학사는 이날 참가한 가족들이 ‘800대1의 추첨 경쟁률을 뚫고 온 분들’이라고 했다. 행사를 마친 아빠들은 ‘아빠효과’를 확산시키기 위한 도교육청의 노력을 한 목소리로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