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파키스탄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9일(현지 시간) 임란 칸 전 총리가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된 뒤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와 유혈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체포 이틀 만에 풀려난 칸 전 총리가 이후 2주간의 보석을 허가받자 과격 시위는 겨우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부정부패 혐의를 둘러싼 정국 혼란의 위험이 남아있다.
◇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정국 대혼돈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은 12일 "앞으로 2주간 칸 전 총리는 부패 혐의로 체포돼서는 안 된다"며 2주간의 보석을 허가했다. 이에 13일 칸 전 총리는 라호르에 도착해 지지자들의 환영 속에서 “나는 100% 다시 내가 체포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의 아내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9일 고등법원에 출석하려다 청사 입구에서 부패 방지기구인 국가책임국(NAB) 요원에 의해 체포됐다. 칸 전 총리는 여러 건의 부패 혐의를 받는 가운데 이번 체포는 대학 설립 프로젝트 관련 부정 축재 혐의에 따라 이뤄졌다.
이는 대혼란의 시작이었다. 체포 소식이 알려진 직후 야당 파키스탄정의운동(PTI) 등 그의 지지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경찰차 수십 대를 불태웠고 일부 언론사, 경찰서도 습격해 불을 질렀다. 이에 정부는 통신망을 일시 차단했고 사립 학교들은 일제히 휴교령을 내렸다. 이밖에 칸 전 총리가 이송된 군사도시 라왈핀디의 육군본부는 물론 셰바즈 샤리프 총리의 사저도 공격을 받았다.
경찰 역시 최루탄, 물대포 등을 사용해 무력 진압한 결과 지금까지 8명 이상이 총격 등으로 숨졌다.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2000여명에 달했다. 정부는 10일 치안 유지를 위해 이슬라마바드, 펀자브주, 카이버·파크툰크와주 등 사실상 전역에 군 병력을 동원했다.
결국 11일 파키스탄 대법원은 칸 전 총리에 대한 석방 명령을 내리며 이틀만에 그를 풀어줬다. 우마르 아타 반디알 대법원장은 이날 칸 전 총리가 사실상 법원 경내에서 체포됐다는 점을 들어 "누구도 고등법원, 대법원 등에서 체포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디알 대법원장은 "칸에 대한 체포는 사법적 존엄성을 위반한 것"이라며 칸 전 총리를 향해 12일 고등법원에 출석해 결정에 따를 것을 지시했다.
◇ 총선 앞두고 여전히 ‘뜨거운 감자’
2018년 집권한 뒤 지난해 4월 의회 불신임으로 퇴진한 칸 전 총리는 이번 부정 축재 혐의는 물론 외국 관리에게서 받은 고가 선물 불법 판매·은닉, 부당 이득 취득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이미 추가 기소가 이뤄진 만큼 또다시 체포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에 가뜩이나 경제난과 1년 전 대홍수 피해로 신음하고 있는 파키스탄이 더욱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칸 전 총리는 퇴출당한 이래 미국 등 외국 세력의 음모로 총리직에서 밀려났다고 주장하며 꾸준히 지지자들을 선동해 왔다. 지난해 11월 유세 도중 괴한의 총격으로 다리를 다쳤을 때는 현 정부와 군부가 암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번 체포 때도 칸 전 총리는 "나는 고등법원에서 납치됐고 막대로 구타당했다"고 주장했다. 13일에는 “내가 다시 체포될 경우 시위자들의 반응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협박조의 발언도 이어졌다. 그는 10월 총선에서의 재기는 물론 정권 퇴진과 조기 총선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만약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평생 공직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이에 CNN은 “2억 2000여명의 국민이 극심한 경제위기와 씨름하고 인플레이션이 치솟는 가운데 이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며 “선거를 앞두고 국가 안정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