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실 특허청장 "내년 2차전지 특허 '우선심사'…반도체 이어 전략산업 지원"

[서경이 만난 사람- 이인실 특허청장]
■대담=김민형 성장기업부장
삼성 등 민간출신 채용으로 반도체 심사 12.7개월 → 2.5개월 단축
바이오·양자·수소분야까지 확대, 2027년 글로벌 IP 3위 국가로
기술유출 처벌 강화…대·중기간 '정당한 가치 이전' 환경 만들 것

이인실 특허청장이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취임 1년간의 소회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할 특허 관련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다음 단계는 배터리(2차전지)입니다. 연내 관계 부처 협의와 심사 인력 확충을 마무리하고 내년 상반기에 배터리도 반도체에 이어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는 물론 바이오 분야에서도 신속한 특허 심사를 실시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겠습니다.”


특허청이 우선심사 대상으로 선정한 분야의 특허출원은 다른 출원보다 앞당겨 집중적으로 심사하기 때문에 결과가 훨씬 빨리 나온다.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특허 심사가 필수다.


지난해 5월 특허청 역사 73년 만에 첫 민간 출신 수장에 올라 화제를 모았던 이인실 청장을 서울경제신문이 1년 만에 서울 강남구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다시 만났다. 1985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후 37년간 특허 관련 업무를 처리해온 베테랑답게 불과 1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특허청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반도체 기업 인력 30명을 전문 심사역으로 채용해 심사 품질 향상과 기술 유출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고 세계 최초로 반도체 전담 심사 조직인 ‘반도체심사추진단’을 출범시켜 반도체 분야의 우선심사 제도가 확실히 운영되도록 했다. 그 결과 반도체 관련 특허 심사 기간은 과거 12.7개월에서 2.5개월로 단축됐다.



임기 2년의 특허청장으로서 후반전에 돌입하는 이 청장의 시선은 이제 배터리를 향하고 있다. 그는 “반도체 특허 심사 혁신을 이미 경험해본 만큼 배터리·바이오 등으로 우선심사를 확대하는 것은 훨씬 속도감 있게 진행할 자신이 있다”며 “올해 진행했던 반도체 분야처럼 국가전략기술 분야인 배터리·바이오 산업도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하고 민간 전문 인력을 채용해 심사 품질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내년 초 배터리 먼저 우선심사 대상으로 선정해 신속한 심사가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우선심사 대상 확대를 위한 법적 토대는 이미 마련된 상태다. 지난해 7월 반도체 특허에 대한 우선심사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우선심사 대상을 규정하는 시행령 9조에 ‘국민 경제 및 국가 경쟁력에 중요한 첨단 기술’을 추가했다. 반도체 외 첨단 기술 분야에도 우선심사 및 퇴직 연구 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법 개정 없이 특허청장의 지정만으로 분야를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청장은 “배터리·바이오 등 다른 첨단 분야들도 반도체와 같은 방식으로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 기업들이 촘촘한 특허망을 확보함과 동시에 글로벌 초격차 우위 유지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앞서 특허청은 지난해 11월 반도체 분야를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올 3월 민간 전문 심사관 30명을 채용했고 반도체 분야 심사관과 신규 인력을 한곳에 집중시킨 세계 최초의 반도체 전담 심사 조직도 설치했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민간 기업의 퇴직자 등을 중심으로 채용한 민간 전문 심사관은 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 속에 출범했다. 국내 고급 인력들이 국가 정책 사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을 뿐 아니라 중국 등으로의 기술 유출을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 청장은 “반도체 민간 전문 심사관분들은 근무 경력과 기술 전문성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고려해 선발했다”며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마음으로 공직을 선택한 데다 정부가 나름대로 충분한 보상도 제공하는 만큼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반도체 분야의 민간 전문 심사관이 알려지자 배터리·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과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인실 특허청장이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취임 1년간의 소회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할 특허 관련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이 같은 특허 심사 강화는 우리나라를 세계 3위의 지식재산(IP) 강국으로 육성하는 ‘새 정부 IP 분야 마스터플랜’을 현실화하는 액션플랜이다. 이 청장은 “2026년까지 반도체·배터리·바이오뿐 아니라 양자·수소 등 다양한 첨단 기술 분야로 이런 시스템을 확장할 것”이라며 “첨단 기술 분야의 특허 심사 속도를 높이면 2027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출원량 기준 글로벌 톱3로 도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특허출원 순위(2020년 기준)에서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다. 최근 특허출원이 늘어나고 있는 첨단 기술 분야를 우선심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신속히 심사해 지원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최근 기술 유출, 기술 침해 등의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기술 유출의 경우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집행유예 수준의 처벌을 받을 뿐이다. 실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기술 유출 범죄 관련 평균 형량은 국내 유출이 10.34개월, 해외 유출은 15.75개월에 그친다. 이마저도 65%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 등에서는 양형 기준을 높여 일벌백계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허청 역시 기술 유출 범죄는 국가 경제·안보에 중대한 파급효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범죄의 억제·예방을 위해 형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허청은 현재 국내 유출의 경우 최대 2년인 양형 기준을 최대 3년으로, 최대 3년 6개월인 해외 유출 양형 기준은 최대 5년으로 권고 형량을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양형 기준 정비 제안서’를 4월 양형위원회에 제출했다. 제안서는 초범이거나 피해가 경미한 경우 집행유예 가능성이 높아지는 불합리를 개선하는 기술 유출 범죄 양형 기준 신설과 피해 규모의 입증이 어렵고 조직적 범죄가 많은 특성을 반영해 가중 및 감경 요소 정비도 제안했다. 이 청장은 “500만 원을 훔친 도둑은 도둑 맞은 시민에게만 피해를 주지만 기술 유출 범죄는 해당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큰 피해를 준다”면서 “500만 원을 훔치면 대부분 실형을 받는데 기술 유출 범죄자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 등과 협력해 양형 기준을 높여 범죄를 예방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 스타트업 간 기술 침해 논란에 대해 이 청장은 “기업들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특정 기술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내고 이전받아 성장시키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허청이 ‘정당한 가치’를 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청장은 “대기업은 정당한 가치를 지불한 후 기술을 이전받고 스타트업은 기술이전 후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서로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 간 자연스러운 기술이전이 이뤄지려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특허청이 앞장서 올해 기술 가치평가 기준을 만들어나가겠다”고 했다.



이인실 특허청장이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취임 1년간의 소회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할 특허 관련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특허청은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맞춰 국내 중소기업·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글로벌 지식재산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 청장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미국을 방문해 국내 기업들을 위한 상담회, 재미한인특허변호사협회와 양해각서(MOU) 체결 등을 진행했다. 특히 현지에서 진행한 상담회에서는 11개 국내 기업의 애로 사항 21건을 상담해 18건을 현지에서 즉각 지원·해결하기도 했다. 그는 “올 3월부터 ‘특허 분쟁 위험 경보 시스템’을 운영해 특허침해와 관련한 막대한 소송 비용과 수출 중단을 미리 예방하고 있다”며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선진 5개 특허청 회의 때 미국 특허상표청(USPTO)과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MOU를 체결해 국내 기업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청장은 앞으로 남은 임기 1년 동안 대한민국이 지식재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그는 “취임 후 지식재산에 기초해 정부 경쟁력, 기술 경쟁력, 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끄는 것을 목표로 노력해왔다”며 “지난해 8월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정책 방향을 발표했고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한 결과 이번 정부가 약속한 반도체 지원 정책을 특허청에서 가장 먼저 구체적인 성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남은 1년도 특허청이 잘해왔던 분야를 다시 점검해 고도화하고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이 강력한 지식재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She is...


△1961년 부산 △동래여고 △1983년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제22회 변리사 시험 합격 △이화여대 대학원 법학 석사 △미국 워싱턴대 법학 박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 박사 △1985~1994년 김앤장법률사무소 △1996~2001년 한국여성변리사회 회장 △2015~2018년 국제변리사연맹 한국협회 회장 △2019~2022년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 △2022년 5월~ 28대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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