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역전세난,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되나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고금리에 이자 못갚고 주택가격 하락
대출상환 못해 '은행권 불똥' 비슷
고물가로 선택지 적은 금융당국
전세불신 확산 막아 거래 틔워야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2000년대 중반 낮은 이자율로 돈 빌리기가 쉬웠던 시절,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도 주택 가격의 100%에 육박하는 모기지론을 받아 주택 구매에 나섰다.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많은 가계가 모기지 이자를 갚지 못했고 주택 가격이 떨어지자 집을 팔아도 대출을 갚지 못하는 디폴트에 빠졌다. 이는 모기지를 판매한 금융기관뿐 아니라 이러한 모기지를 바탕으로 한 파생상품을 거래했던 많은 금융기관을 파산시켰다.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깡통전세나 역전세난도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주택 구매자와 은행 간의 직접적인 채무 관계에 전세 세입자라는 중간 매개체가 끼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인해 미국처럼 집값에 육박하는 대출 자체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집값 하락 시 대출액이 집값을 넘어서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세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금융 시장이 있어 은행 대출을 보완한다.


많은 부동산 투자가 대출과 동시에 전세를 낀 갭투자의 형태로 이뤄진다. 지난해 서울의 5개 구에서 50%에 육박하거나 넘는 주택 구매가 갭투자 형태로 이뤄졌다. 전세사기 피해가 몰렸던 강서구의 경우 갭투자 비중은 60%가 넘었다. 따라서 이자율 상승이 많은 부분 전세 시장을 통해 금융권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정부 임대차 3법으로 인한 전세대란 당시 전셋값의 급격한 상승과 최근 이자율 상승으로 촉발된 집값 하락으로 인해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가격 역전 현상에 따른 역전세난은 임대차 3법 이후 급격히 상승한 가격으로 형성된 전세 만기가 대거 돌아오는 올 하반기부터 심화할 것이다.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만기가 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세입자는 길거리에 나앉게 되고 전세대출을 갚지 못해 결국 은행권으로 그 불똥이 튄다. 규모도 만만치 않다. 은행권의 전세자금대출은 지난해 170조 원을 넘어서며 3년 새 약 70% 가까이 증가했다. 이러한 깡통전세와 역전세난은 세입자와 금융권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재앙이 될 수 있다.


이 사태의 근간에는 이자율의 급격한 상승이 있다. 금융위기 당시 각국 중앙은행은 앞다퉈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당시에는 물가가 낮아 가능했지만 지금은 높은 물가로 인해 이자율을 낮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금융 당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은 많지 않다. 우선은 역전세난을 해결할 수 있게 전세 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또 전세 시장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는 것을 막아 정상적인 전세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불신으로 인해 전세 수요가 증발하면 전세 시장을 통한 자금 순환이 멈추고 이는 금융권은 물론 주택 건설 시장에도 악영향을 준다. 장기적으로는 규제하기 힘든 변동성 심한 사금융 시장이 된 전세 대신 월세로의 적극적인 전환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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