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등 국가 재정건전성 지표. 재정준칙(fiscal rule)을 말한다. 국가 채무가 폭증하지 않게 기준을 만들겠다니 복잡할 게 없다. 국회에 계류중인 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을 경우 적자 한도 비율을 2% 이내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적자 비율 2%를 초과할 경우 세계잉여금을 100% 나랏빚을 갚는 데 쓴다는 것도 포함됐다.
쉽게 이야기해 개인이 대출을 받을 때 적용 받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등과 흡사하다. 개인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재정준칙은 재난, 팬데믹 등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예외를 두는 조항도 있다. 빚을 내서라도 소외·취약계층을 지원하고 민간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재정의 역할이 있어서다. 이처럼 쟁점이랄 게 없는 재정준칙이 30개월 넘도록 국회에 묶여 있다.
왜 일까. 지난 3월 국회기획재정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여야의 입장이 드러난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년 간 국가 채무가 416조 원 늘었다. 개인 가정도 소비에, 지출액에 상한을 두는 데 국가가 이런 것을 안 한다”며 전 정부에서 늘린 국가 채무를 지적했다. 반면 정태호 민주당 의원은 “재정의 사회적 정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며 준칙 도입에 따른 복지와 사회적 약자 지원의 약화를 우려했다. 그러자 다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는 말처럼 재정은 건전할 때 지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점잖은 대화로 보이지만 개별적으로 물어보면 공방의 속살은 보다 선명해진다. 여당은 전임 정부의 확장재정이 나라를 망쳤으니 사실상 민주당은 백기투항하라는 식이다. 현 정부에서도 야당의 비협조로 재정이 망가졌다는 식의 ‘총선용 알리바이’만들기에 골몰하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직전 집권당으로 의회 권력을 쥐고 있다면 재정준칙의 문제점을 파고들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작년 말 야당 단독예산안까지 통과시키겠다던 그 호기로움을 재정준칙에 쏟는다면 스스로 우려하는 준칙의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다.
국회 기재위는 15일부터 이틀 동안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연다. 이번이 21대 국회에서 준칙 통과의 마지막 기회라는 데 이견이 없다. 준칙 대신 이미 총선용 포퓰리즘 법안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고 있다. 경제소위 소속 여당 김영선·류성걸·박대출·송언석 의원과 야당 신동근·김주영·서영교·양기대·이수진·홍성국 의원의 ‘협치’를 기대한다. 출산율 0.78. 잠재성장률 0%대 전망 등 위기를 알리는 신호는 계속되고 있다. 위기 대응 첫 단추인 ‘재정 방파제’ 마저 정쟁의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안된다. 진짜 위기는 오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