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은 2010년부터 매년 관계 부처 합동으로 이상기후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중부지방의 집중호우와 남부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중부지방은 시간당 100㎜가 넘는 강한 비로 409㏊의 농경지가 유실되고 19명의 인명 피해와 3154억 원의 재산 피해를 당했다. 전남 지역은 6~7월 섬진강댐 저수율이 평년의 54.8%로 심각 수준을 기록하며 1442㏊에 달하는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전남 지역의 가뭄은 올해까지 지속돼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까지 부족한 사태에 이르렀다. 환경부는 지난달 3일 1년 넘게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광주·전남 지역 가뭄 대책으로 물 공급 체계 조정과 더불어 댐과 댐, 농업용 저수지와 댐 연결 등 수계 간 연결을 통해 일일 최대 61만 톤의 용수를 추가로 공급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날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해 중장기 가뭄 대책 추진 등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것을 지시했다. 이처럼 앞으로는 지역과 용도를 가리지 않고 남는 물을 부족한 곳에서 활용할 수 있게 물 연결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물길을 연결한다고 해도 보낼 물이 없을 때다. 지금의 전남 지역과 같은 국부적 가뭄이 아닌 국가적 가뭄은 수계 연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후위기로부터 가뭄을 극복하려면 신규 수자원 확보가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댐이나 저수지 신설은 환경문제나 지리적 여건 등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기존에 확보된 수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려면 지금의 용수 사용 구조를 체질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고 그 대표적 사례가 농업용수의 손실률을 낮추는 것이다.
농업용수는 우리나라 전체 수자원 이용 가능량 372억 ㎥의 41%인 152억 ㎥를 차지하지만 손실률이 50%에 달해 실제 사용량 대비 많은 공급량이 필요하다. 근본 원인은 농업용 수로의 물 공급 방식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용 수로는 대부분 개수로 형식이며 그마저도 콘크리트 수로가 아닌 흙 수로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스템은 상당한 용수 손실을 초래한다. 개수로는 일정 수위 이상을 유지하지 않으면 말단부 농경지의 수로에까지 물을 보내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또 경작지에 보내는 양을 제외하고는 하천에 방류되기 때문에 실제 농경지에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물을 저수지 등으로부터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농업용 수로도 개수로가 아니라 생활용수와 같이 관수로로 바꿀 때가 왔다. 관수로화를 통해 수로 손실률을 10%만 줄여도 연간 15억 2000만 ㎥의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팔당댐의 6배에 달하는 양이다. 이미 정부에서는 농업용 수로의 관수로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시범 사업과 함께 여러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문제는 막대한 예산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예산만으로 전국의 수로를 관수로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대적 가뭄 극복을 위해 농업용 수로의 관수로화 추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관수로화를 통해 절약된 용수는 평상시 하천의 유지용수로 사용하고 필요시 생활용수나 공업용수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가뭄 위기 극복과 건전한 물 사용 체계 개선을 위해 범정부와 학계, 물 사용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모든 수로를 동시에 관수로화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얼마 전 수계관리기금을 수질 개선 용도 외에 안정적인 물 공급 사업에도 쓸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조만간 농업용수의 관수로화에 수계관리기금이 투입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