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전문의가 다루는 장기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수술 난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위험합니다. 전공의 지원율이 낮아지면서 업무량 부담도 갈수록 늘어가고 있죠. 환자를 살린다는 사명감 하나로 고된 수련 과정을 마치고도 흉부외과 전문의로 살 수 없는 현실에 내몰리는 후배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김승진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의사회장(센트럴흉부외과의원 대표원장)은 15일 서울경제와 만나 "정부가 흉부외과를 필두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에 대한 지원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인력 이탈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며 "필수의료 인력난을 해결하려면 힘든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된 의사들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토박이인 김 회장은 부산대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직후인 1994년 경상북도에 의원을 차렸다. 이후 총 세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의원을 운영한 지 만 29년을 채웠다. 흉부외과 전문의로는 드문 길을 걷게 된 연유를 물으니 "막상 전문의를 따고 보니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흉부외과를 전공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대학병원에 남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 역시 평생 대학병원 수술방을 지키며 심장, 폐 수술을 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빅5 병원에서 펠로우(임상강사) 한 자리가 났는데 월급이 100만 원 남짓이라 서울에선 집을 얻는 것조차 불가능했다"며 "떠밀리다시피 지방에서 개원해야 하는 현실이 다소 서글펐다"고 털어놨다.
심장, 혈관질환 등 곡난도 수술을 주로 하는 흉부외과는 동네의원에서 수련 경험을 살리기 쉽지 않다. 올해 3월 기준 동네의원을 운영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371명이다. 그 중 81.9%(304명)가 전공과 다른 진료를 하고 있다. '흉부외과' 전공을 살려 동네의원을 차린 이들이 전국을 통틀어 60명 남짓이란 얘기다.
김 회장도 경북, 제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총 3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흉부외과 간판을 걸지 못했다. 흉부외과 전문의란 타이틀이 개원의사로선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씁쓸함도 컸다. 고심 끝에 4번째로 문을 연 병원이 지금의 센트럴흉부외과다. 그는 "10년 넘게 의원을 운영하면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며 "심장혈관 전문가라는 이력을 살리면서도 개원가에 적합한 모델을 고민하다 하지정맥류에만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방향을 잡고 하지정맥류 전문의원으로 변경한 결과 웬만한 성형외과, 피부과도 버티기 힘들다는 서울 강남구에서 16년째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정맥류에 특화된 병원 자체가 드물었던 데다 수술 건수에 욕심 내지 않고 환자 한명 한명을 꼼꼼히 챙기다 보니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왔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려놨던 '흉부외과' 간판을 내걸고 정공법을 택한 것이 주효했던 셈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16년동안 흉부외과 간판을 지켰어도 여전히 개원가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질적인 저수가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환자 수가 조금 늘어나면 과잉진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2016년에는 하지정맥류의 대표적 치료법인 레이저 시술이 실손보험 보장 목록에서 제외되며 큰 위기를 맞았다. 그는 "하지정맥류 환자들이 직접 느끼는 통증 정도와 별개로 미용 목적의 시술이란 오해를 받곤 한다"며 "레이저 치료가 꼭 필요한 컨디션의 환자들이 있다는 점을 소명한 뒤에야 미용과 질병 치료 목적으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한정맥학회 등 6개 학회가 발표한 '하지정맥류의 초음파검사법' 가이드라인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하지정맥류 진단에 필수인 초음파검사의 시행방법에 대해 '환자가 서있는 자세에서 측정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등 현장과 동떨어진 기준들이 명시된 탓이다. 하지정맥류 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흉부외과 개원의들은 물론 대학병원에서도 환자를 세워둔 채 초음파검사를 하지 않는다. 자세가 불안정할 뿐 아니라 기립성 저혈압 등으로 검사 도중 쓰러질 가능성이 있어 대부분 환자에게 안전띠를 채우고 침대에 눕힌 다음 침대를 60도 이상 세워 검사한다. 그는 "현장은 물론 교과서 내용과도 다른 검사법이 담긴 가이드라인이 발간되면서 실손보험사들과 분쟁 소지가 생길 수 있다"며 "정석대로 진료하는 의사들마저 도매급으로 과잉진료 오해를 받고 결국엔 환자들까지 피해를 보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한탄했다.
2012년부터 11년째 의사회 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흉부외과에 대한 깊은 그의 오랜 꿈은 병원선을 타고 아이티, 아프리카 등 의료기술이 낙후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심장수술을 해주는 것이다. 그는 "6.25 한국전쟁 때 덴마크 병원선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한국 정부도 유휴인력을 활용해 해외로 의료봉사를 보낼 때가 됐다"며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맘껏 뛸 수 있는 필드를 마련해주고 심장수술의 명맥을 잇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