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거부권 행사 가닥에도…의료혼란 불씨 여전 "면허박탈법 빠져 유감"

당정,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하기로 결정
의사·간호조무사 등 의료연대 "면허취소법도 거부권 요구"
간호협회 "간호법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 나설 것"

대한간호협회 대표단이 14일 서울 중구 간협 회관 앞에서 간호법 공포 촉구 단식 농성을 이어가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성형주 기자

당정 건의로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찬반 진영 간 희비가 엇갈렸다. 전국 62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한 대한간호협회는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의사·간호조무사 등 의료직역 13개 단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 결정을 환영하다”면서도 “의사면허취소법까지 거부권 행사 대상에 포함될 때까지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간호법 공포와 별개로 당분간 진료현장의 혼란이 지속되면서 국민들의 불편감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단체, 당정 결정에 반발 "62만 회원 총궐기로 단죄할 것"

대한간호협회는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가 지난 14일 대통령에게 간호법 거부권을 건의한 것과 관련, 15일 성명을 내고 "총궐기로 허위 사실을 바로잡고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반발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재난적 의료위기 상황부터 종식을 선언한 지금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한 번도 국민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간호사들에게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하는 입법 독주'라는 치욕적인 누명을 씌운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62만 간호인들이 총궐기를 통해 발언의 책임자들을 단죄하겠다는 게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 등 간호협회 대표자들이 9일 무기한 단식 돌입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한간호협회

간협은 "간호법은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 합의로 출발해 여야 모두가 대표 발의했을 뿐 아니라 국회법에 따라 무려 2년 간 4차례 법안심사 등의 적법한 절차를 통해 심의 의결됐다"며 "간호법안 없이도 간호사 처우 개선이 가능하다면 왜 지난 총선과 대선 때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는지 답해야 할 것"이라고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이어 "간호법의 핵심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자 한 것"이라며 "선진국과 같이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약속대로 공정과 상식에 입각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간호조무사 등 의료연대 13개 단체, 안도…"거부권 행사 촉구"

의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법 제정에 반대했던 의료직역들은 당정의 결정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의사, 간호조무사 단체 등은 이날 정부와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한 데 대해 환영하면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왼쪽부터) 11일 2차연가파업에 참여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장인호 임상병리사협회장, 곽지연 간호조무사협회장. 사진 제공=보건복지의료연대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가 구성한 보건복지의료연대와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이날 입장문에서 "간호법의 입법 취지였던 의료기관 내 간호사 처우 개선 조항이 여당의 중재안에 포함됐음에도 더불어민주당과 대한간호협회 등은 실체도 없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중재안 수용을 거부했다"며 "야당은 마지막 협치의 기회였던 중재안마저 거부하며 입법 독재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 보건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입법의 정당성마저 없음이 드러난 간호법에 대해서 대통령께 재의요구권 건의를 의결한 당정 협의 결과는 공정하고 상식적"이라며 "간호법 거부권 건의 결과에 환경과 안도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 의료연대 "중범죄 의사면허 취소법 빠진 것 유감"

다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의료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거부권 건의 대상에서 의료인 결격·면허 취소 사유를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빠진 점은 유감"이라며 "최종적으로 대통령 거부권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표결 당시 여당 의원들이 항의·퇴장하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민주당의 찬성 당론 결정에도 불구하고 기권 22표·반대 1표가 나온 만큼, 위헌성이 있어 제정되어서는 안되는 악법이라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이들은 "우발적 실수에 의한 교통사고만으로도 의료인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의료인은 상대적으로 가장 덜 위험한 분야를 택하고 방어적인 행동 양식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필수의료 분야 기피를 시작으로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를 가속화시켜 국민 피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안정적인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 면허박탈법도 최종적으로 대통령 거부권에 포함돼야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간호법과 면허박탈법이 최종적으로 폐기될 때까지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현직 진료지원간호사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한간호협회

간협은 사실상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아지자 투쟁 수위를 결정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간협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간호사 단체행동’ 의견조사에 지난 12일 저녁까지 전체 회원의 3분의 1가량인 7만5239명이 참여했다. 그 중 98.4%(7만4035명)가 ‘적극적 단체 행동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주말 동안 참여인원이 크게 늘어나며 단체 행동에 대한 지지를 얻은 만큼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파업이 아닌 형태로 당정을 압박할 만한 카드를 꺼내야 하기에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대학병원 수술실을 중심으로 전국에 1만 명 가량 활동 중인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불법 소지가 있는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등의 형태로 단체행동에 동참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PA 간호사들은 대학병원 전공의(레지던트)들로 구성된 전공의협의회가 이달 초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법이 그간 암묵적으로 진료현장에서 행해졌던 대리수술과 대리처방을 합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까 우려스럽다"고 발언하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간호법 어디에도 간호사 대리처방 및 대리수술을 합법화할 수 있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간호사는 누구나 본인의 면허범위 내 업무를 정정당당하고 하고 싶어하며 전공의 대체 업무를 하고 싶지 않다"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 관현 규정을 따로 떼어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권리 등이 담긴 단독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된 후 재교부 받았음에도 또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10년간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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