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이르면 16일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사상 첫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총궐기는 물론 면허 반납, 연가 투쟁 등 다양한 수단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의협대로 거부권 행사 대상에 ‘의료인 면허 박탈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이 빠진 것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보건의료 직역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직역 간 업무 재정비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본지 5월 8일자 1·5면 참조
복지부는 15일 ‘채찍과 당근’을 모두 꺼냈다. 간호사 처우 개선과 관련해 간호사 단체와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단체행동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직역 간 갈등이 이번 간호법 사태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직역 직무 재정비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간호법 제정안 관련 브리핑을 열고 “간호 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나가고 의사 단체와는 의료법 개정안 등에 대해 계속 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체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있을 수 없다”며 “정부는 관련 법과 관련 매뉴얼에 따라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긴급상황반을 통해서 점검을 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은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복지부의 입장 발표 후 간협은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김영경 간협 회장은 “모든 간호사들이 압도적으로 적극적인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며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적극적인 단체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간협이 8~14일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 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 인원 10만 5191명(14일 자정 기준) 중 10만 3743명(98.6%)이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간협은 파업을 제외하고 다양한 단체행동 수위를 놓고 논의 중이다.
이에 앞서 14일에는 성명을 통해 국민의힘과 복지부의 거부권 건의를 맹비난했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이 대통령 공약인 만큼 허위 사실의 실체를 밝히고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62만 간호인의 총궐기를 통해 치욕적인 누명을 바로잡고 발언의 책임자들은 반드시 단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의협·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정부 여당의 대통령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건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연대와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에서 “대한민국 보건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입법의 정당성마저 없음이 드러난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에게 거부권 건의를 의결한 당정 협의 결과는 공정하고 상식적”이라며 “간호법 거부권 건의 결과에 환영과 안도를 전한다”고 평가했다.
의료연대는 한 발 더 나아가 의료인 면허 박탈법이 거부권 행사 건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날을 세웠다. 이들은 “면허 박탈법은 결과적으로 필수의료 분야 기피를 시작으로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를 가속화시켜 국민 피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간호법과 면허 박탈법이 최종적으로 폐기될 때까지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직역마다 각자 명분을 내세우지만 단체행동에 대한 여론은 차갑다. 한 시민은 “의사가 파업한다고 생명 볼모로 집단행동한다고 비판했던 간호사 아니냐”며 “걸핏하면 단체행동 운운하는 것을 보면 모두 국민 건강은 뒷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