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눈치만 보다 45일 허비…적자 메우기엔 '코끼리 비스킷'

◆ 16일부터 전기·가스료 인상
한전·가스공사 누적 적자 56조
5.3% 올려선 해소 기대 어려워
주가도 인상안 발표후 되레 하락
금통위 같은 요금결정기구 필요


“겨우 ‘코끼리 비스킷’ 수준입니다.”


2분기(4~6월) 전기·가스요금이 절반이 지난 시점에야 인상 폭이 결정됐다. 그나마도 전기요금은 ㎾h당 8원, 가스요금은 MJ당 1.04원으로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눈치만 보다가 제때 요금 인상을 하지 못한 데다 ‘찔끔’ 시늉만 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요금 관련 당정협의를 마치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는 데 당정이 뜻을 모았다”며 “요금 인상 단가와 관련해서는 급격히 인상하면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당 간사인 한무경 의원도 “방만한 공기업의 허리띠를 더 졸라매도록 하고 민생 부담을 최소화해 덜어드리는 데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전기·가스요금 인상 폭을 제한한 것은 연착륙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여당도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시급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한전의 2021년 이후 누적 영업적자가 44조 7000억 원에 달하고 가스공사의 미수금도 올 3월 말 현재 11조 6000억 원이나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명분을 쌓느라 45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두 공기업이 하루 지급해야 하는 이자만 매일 50억 원이니 그간 2250억 원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이번 요금 인상안 발표 직전 각각 25조 7000억 원과 15조 4000억 원의 자구안을 내놓았고 정승일 한전 사장은 사의도 표명했다. 이 때문에 요금 인상 폭이 당초 안보다 조금 더 커지는 게 아니냐는 일말의 기대도 나왔지만 전기·가스요금은 각각 5.3% 오르는 데 그쳤다. 이로써 한전은 연간 영업적자를 2조 6600억 원 줄일 수 있게 됐다. 올 1분기 6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낸 한전으로서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실제로 인상안 발표 이후 한전과 가스공사 주가가 오히려 1~2% 하락한 이유다.


당초 정부는 올해 전기요금을 ㎾h당 53.1원, 가스요금을 MJ당 10.4원 인상해야 양 사의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올 상반기까지 목표 달성률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각각 39.7%, 14.4%에 그치고 있다. 하반기 더 속도를 내야 한전과 가스공사의 정상화가 가능하지만 3·4분기 추가 인상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호현 산업부 전력정책관은 “예단하지 않겠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 동향,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시장에서는 내년 4월 총선까지 추가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이번 요금 인상을 계기로 에너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당부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에너지 고소비 구조를 바꿔야 이달까지 15개월 연속인 무역수지 적자 흐름도 돌려세울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장관은 “에너지 효율을 제고해 전력소비를 근본적으로 절감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요금 부담도 완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취약 계층의 고효율 가전 구입과 고효율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노후 아파트·고시원은 에너지 진단을 실시해 전력 누수 요인을 잡아낼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공공요금이 정치 논리에 좌우되는 일을 막기 위한 독립적 의사 결정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원가 이하의 요금을 정치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며 “우리도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독립성을 가진 요금 결정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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