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실종에 巨野 '불통입법' 폭주…학자금 무이자법도 결국 강행

■尹, 간호법 거부권 행사
강행처리 민주에 설득 못하는 국힘
노란봉투법·방송법 등도 충돌 예고
총선 앞두고 이해득실 따지기 몰두
언제든지 거부권 사태 재연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안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두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거대 야당에 막힌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의석 수를 앞세워 강행 처리해도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 법안은 앞으로도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경제와 사회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며 “국가의 미래를 봤을 때 우리나라가 정상적으로 가고 있구나, 발전할 수 있구나, 미래 세대는 더 나아지겠구나 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정과제 실현에 박차를 가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우려다. 지난 1년 간 보여온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와 여기에 맞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이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타협이 실종된 정치의 민낯이라는 비판도 제기한다.


윤 대통령이 이날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국회 구조상 이대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 직역 간 갈등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정치권 입장에서는 대안 마련이 절실하지만 여야 간 첨예한 입장 차로 난항이 예상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간호법 조항에서 △간호사법 명칭 변경 △지역사회·의료기관 문구 삭제 △간호조무사 고졸 학력 제한 폐지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내용 의료법 존치 등 네 가지 조항을 수정한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원안 통과만을 고수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대결 정치에 대화마저 단절된 불통 정치가 더해지면서 국회 스스로 입법부의 권위를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167석을 가진 거대 야당은 협상보다는 머릿수를 앞세워 강행 처리하는 ‘편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을 활용한 안건조정위원회 무력화, 이를 통해 법안을 본회의로 바로 상정하는 직회부 카드는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바라보는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은커녕 대통령만 바라보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간호법 대통령 거부권 결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거부권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은 현재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취업 후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 등의 입법도 밀어붙이고 있다. 취업 후 상환하는 학자금 대출에 일부 무이자 혜택을 주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은 이날 상임위인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정부와 여당은 재정 부담, 도덕적 해이, 대학에 미진학한 청년이나 기타 취약계층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며 반대해 왔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여기에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쌍특검(50억 클럽·김건희) 법안도 올해 말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이다. 이들 법안은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제3, 제4의 거부권 사태가 예고된 상황이다.


그럴수록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또한 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현재 재정준칙, 법인세를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되돌리는 감세정책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들이 거대 야당의 벽에 막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대결적 구도가 굳어질수록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위한 공정채용법,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 개혁 관련 법안도 통과가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여야는 계속되는 거부권 사태가 내년 총선에서 누구에게 유리할지 이해득실을 따지기에만 바쁜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민주당은 “국정 운영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 여당에 있다”며 각자 아전인수 식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장면이 윤석열 정부 출범 초부터 예견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말기 민주당은 ‘위장 탈당’ 논란을 감수하면서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기소권 분리)’으로 불린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같은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대화하려는 노력은 정치권 모두 보이지 못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넘도록 단 한 번도 영수회담이 개최되지 않은 게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정국이 급랭하면서 당장 윤 대통령이 12일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만찬에서 약속한 여야 상임위원장 회동부터 어려워질 수 있다. 민주당이 반발하면서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졌다. 나아가 인적 쇄신을 할 환경과 여건도 악화됐다. 여야의 극단적 대치 상황이 인사청문회 정국으로 옮겨붙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도 최근 주변에 “국면 전환용 인적 쇄신은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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