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제2 레고랜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목적으로 국내 증권사들에 대한 전방위 검사에 착수했다. 특히 매수자와 매도자가 사전에 가격을 정해놓고 채권을 거래하는 불건전 영업 행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달 8일부터 19일까지 하나증권을 대상으로 신탁과 랩어카운트 운용 실태 전반을 살피는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하나증권을 시작으로 전체 주요 증권사의 신탁·랩어카운트 현황을 조사할 계획이다. 비유동성 자산 편입 규모와 운용상 위험 요인 등이 주요 조사 대상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올 3월 16일 열린 ‘금융투자 부문 금융 감독 업무 설명회’에서 검사 계획을 알렸다”면서 “주요 증권사들은 모두 검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금감원은 증권 업계의 불합리한 채권 거래 관행을 겨냥해 이번 검사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에 잠재한 불안 요소를 조기에 통제해 지난해 9월 발생한 레고랜드 채권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에 뒤이은 시장 혼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들은 신탁·랩어카운트에 담는 자산 대부분을 채권으로 채우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레고랜드의 사업 주체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서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지급보증을 강원도가 거부하면서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린 사건이다.
업계는 무엇보다 이번 검사에서 자전거래나 파킹 등 채권 통정매매가 중점적인 검사 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전거래는 금융회사가 자사 펀드나 계정으로 매매하는 방식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악화한 수익률을 끌어올릴 때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킹은 매수한 채권을 장부에 곧바로 기록하지 않고 다른 중개인에게 맡긴 뒤 펀드매니저가 직접 매수하거나 다른 곳에 매도하는 방식의 거래다. 금융 당국이 불건전 영업 행위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는 매매 방식이기도 하다. 통정 거래는 최근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 때 작전 세력의 매매 수법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금감원이 이번 검사를 통해 업계에 확산한 각종 편법적인 채권 거래 관행을 더 엄격하게 다룰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