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저는 ‘대한민국 1호 영업 사원’으로서 정상 세일즈 외교를 펼쳤습니다.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약 40조 원 규모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올 1월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에서는 3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오일머니의 국내 투자로 우리 유망 스타트업·벤처·중소기업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취임 1주년을 돌아보며 주요 성과로 꼽은 것 가운데 하나가 정상외교를 통한 투자 성과였다. 그중 사우디에서 시작된 ‘신(新)중동붐’은 다른 국가로 확산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결성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의 주요 부처 장관들이 잇따라 방한해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8일에는 사우디 교통물류장관, 13일에는 바레인 산업통상장관이 한국을 찾았고 카타르 에너지장관(31일)과 통상산업장관(6월 15일)의 방한도 예정돼 있다.
이에 따라 카타르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카타르 국영 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올해 6~12척의 초대형 LNG 운반선 발주를 추진하고 있다. 카타르가 현재 7700만 톤인 LNG 생산량을 2025년까지 1억 1000만 톤으로 늘리기로 계획하면서 선박 발주 또한 확대하고 있어서다. 특히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LNG선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국내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 올 3월 17만 4000㎥급 LNG 운반선의 가격은 2억 5400만 달러(약 3380억 원)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그간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었던 중국 수출액이 11개월 연속 감소하는 가운데 신중동붐은 수출에 단비가 되고 있다. 대(對)대중동 수출액은 지난해 12월 전년 동월 대비 5.8% 증가한 데 이어 올 2월부터는 매달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대중동 수출 증가율은 2월(20.6%)과 3월(21.4%)에는 20%대를 기록했고 4월에는 31.2%를 찍었다. 4월 1~25일 기준 자동차(58.9%), 일반 기계(70.6%), 철강(30.8%), 섬유(32.2%) 등 다수 품목에서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해 중동 국가들이 ‘오일머니’를 축적한 상황과 관련이 깊다. 당분간 고유가 상황이 지속돼 중동 국가들의 성장 기대감도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쿠웨이트·오만·UAE·카타르 등 GCC 6개 회원국은 올해 6.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나왔던 올해 전망치보다 2배 이상 높다. IMF는 이들 국가가 2026년까지 1조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윤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 방한을 계기로 중동 외교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우리나라와 협력을 강화하는 UAE·바레인·카타르는 모두 사우디가 주도하는 GCC 회원국이다. 13일 바레인 통상장관회담에서 수출 계약을 체결한 기업 가운데 넥스트온은 GCC 6개국에 2700만 달러 규모의 스마트팜 진출을 추진하고 있고 보안 업체인 그린텔 역시 UAE 경제사절단으로 비즈니스 상담회에 참석해 이미 수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협력 분야가 전통적인 에너지·건설 등에서 신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중동 국가들은 석유·가스 의존도를 줄이고 제조업·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높은 데다 UAE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경험 등으로 중동 국가들의 신뢰가 높다는 게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동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해 인프라가 열악해 스마트시티 개발 수요가 높고 에너지·원자력발전·담수화 등 우리나라가 비교 우위를 가진 산업이 많은 지역”이라며 “단순 상품 수출을 넘어 중동의 거대 자본과 결합한 연구개발(R&D)부터 다양한 형태의 협력과 이익을 공동으로 추구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