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일본 히로시마 방문 일정 중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 원자폭탄 피해자들과 만났다. 기존 정부가 한일 간 역사 문제에 발목을 잡힌 사이 잊혔던 원폭 피해 재일동포들을 보듬고 핵 비확산 의지도 다지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19일 히로시마의 한 호텔에서 원폭 피해자 동포 10명과 만났다. 윤 대통령은 “우리 동포들의 원폭 피해는 식민지 타향살이를 하며 당한 것이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이 더 극심할 것”이라며 “소중한 생명과 건강, 삶의 터전을 잃은 이중고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할 예정”이라며 “양국 정상이 함께 위령비를 찾는 것은 사상 최초고 사실 한국 대통령으로서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은 한국인 희생자를 추모하며 양국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며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은 “한국은 국적의 기준을 속인주의로 세운다”며 “동포가 러시아에 살든, 일본에 살든, 미국에 있든 다 재외동포”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함께 애쓰셨던 분들도 꼭 한국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위해 방일한 G7 정상들도 이날 히로시마의 ‘원폭 돔’이 있는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자료관을 방문했다.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과 영국·프랑스 3개국을 포함한 G7 정상이 함께 자료관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핵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G7 정상들은 기시다 총리의 설명을 들으며 자료관을 약 40분간 둘러봤다. 정상들은 시종일관 숙연한 모습이었다.
히로시마는 1945년 8월 6일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다. 자료관에는 피폭자의 유품과 피폭 전후 히로시마의 모습 등 원폭 피해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일본 정부는 G7 정상들이 자료관에서 피폭자인 오구라 게이코(85) 씨를 만났다고 전했다. 정상들의 자료관 내 방문은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발언 내용도 알려지지 않았다. G7 정상들은 자료관을 둘러본 뒤 굳은 표정으로 나와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위령비까지 걸어갔다. 이들은 일렬로 서서 헌화한 뒤 묵념했다. 히로시마=주재현 기자 이태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