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량 기내식’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아시아나항공(020560)(이하 아시아나)이 ‘문제의’ 기내식을 만든 업체와 수년간 정산금 갈등을 빚고 국제 중재까지 가는 공방 끝에 420억 원을 물어줄 상황에 놓였다. 아시아나는 현재 이 업체와 2048년까지 체결된 ‘30년 기내식 독점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23일 아시아나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법원은 지난해 말 아시아나가 제기한 ‘싱가포르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 취소’ 소송에서 1심에 이어 항소 역시 원고 패소(항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앞서 아시아나의 기내식 납품사인 게이트고메코리아(이하 GGK)는 지난 2019년 판매 단가 산정에 대한 이견으로 아시아나가 정산금을 주지 않는다며 싱가포르 ICC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신청했고 ICC는 2021년 2월 ‘아시아나가 420억 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아시아나는 중재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즉각 취소 소송을 냈으나 이듬해 5월 1심에서 패소했고, 지난해 말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과를 받았다. GGK는 중재 판정이 나온 2021년 6월 서울 남부지법에 판정 집행 청구를 신청했으며 이 건은 아직 진행중이다. 아시아나는 법원 결정을 기다리며 정산금 지급 없이 420억 원을 회계상 충당부채로 반영해 둔 상태다. 통상 ICC 판정은 국내 법원을 통해 그 집행을 지연하는 경우는 있지만, 결과가 뒤집힌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식을 둘러싼 아시아나의 속앓이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시아나는 중국 하이난그룹이 대주주로 있는 스위스의 기내식 공급업체 게이트고메와 합작으로 GGK를 세우고, 이 회사에 2018년부터 30년간 기내식 독점 거래권을 줬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받는 대가였다. 기내식 업체가 GGK 한 곳뿐인 상황에서 정식 납품을 앞두고 생산 공장 화재가 발생했고, 이후 임시로 위탁 생산을 맡은 하청 업체 대표는 물량 압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로 2018년 아시아나 항공편에 기내식이 대거 공급되지 않는 ‘노 밀 대란’이 벌어졌다. 이 즈음 게이트고메의 대주주가 바뀌면서 GGK와 아시아나 간의 우호적인 관계도 사실상 끝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후 아시아나 기내식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유통기한 지난 버터로 빵을 만든 사실이 적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GGK의 기내식 품질 논란이 반복되면서 아시아나도 결별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해 1월 GGK를 상대로 ‘30년 기내식 공급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민사 소송에 이어 10월에는 박삼구 전 회장과 당시 경영진, 게이트고메 등에 대한 ‘기내식 사업권 저가 매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30년 족쇄 풀기’ 작업에 나선 것이다. 아시아나에는 대한항공과의 합병을 앞두고 잠재 손실 최소화가 중요한 상황인 만큼, ICC의 항소 기각이 현재 국내 법원에 다수 계류 중인 관련 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