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전 세계에 저성장의 그림자가 짙어진 상황에서도 몇몇 국가들이 극적인 경제 회복으로 반전을 이루며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민적 반발에도 노동·연금 개혁 등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국가의 체질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한때 ‘유럽의 문제아’로 불리며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처했던 그리스는 과감한 구조 개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일본도 글로벌 기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소비 진작을 위한 임금 인상에도 드라이브를 걸며 성장률이 반등했다. 반면 포퓰리즘 역풍을 맞은 아르헨티나 경제는 100%를 넘어선 물가 상승률로 허덕이는 상황이다.
◇‘유로존 문제아’ 그리스, 신용등급 상향 눈앞=2012년 국가 부도 이후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 의존해온 그리스 경제가 최근 회복세를 타며 극적 부활을 꾀하고 있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1년 8.4%, 2022년 5.9%로 상당히 높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그리스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올리면서 신용등급이 현재보다 한 계단 높은 투자 등급인 BBB-로 상향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경제 회복을 최우선시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의 과감한 노동 개혁이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디폴트 위기에 빠졌던 그리스 경제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9년 집권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무상의료 폐기와 연금소득 대체율 개편에 이어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공공 부문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고 수익성 높은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등 개혁에 나서 그리스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0년 206%에서 지난해 171%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최근 총선에서도 집권 신민당이 야당과 득표율 20%포인트 이상 차이로 압승했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베르크방크의 홀거 슈미딩 연구원은 “그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부채 비율이 하락하는 국가 중 하나”라며 “그리스의 부채 비율은 2026년까지 이탈리아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포르투갈, 고질적 고실업 해소=프랑스와 포르투갈 역시 노동 유연성을 골자로 노동 개혁을 단행해 고질적인 문제였던 저성장·고실업 기조를 타개한 국가로 꼽힌다. 임기 말 지지율이 역대 최악인 4%까지 추락했던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뒤를 이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개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취임 3개월 만에 개혁안을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법률 명령 형태로 발표했으며 기업 협약 적용 범위 확대, 부당 해고 보상금 한도 설정, 해고 재판 절차 간소화 등 정책을 통해 기업의 고용 부담을 완화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경제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두드러진 경제 회복세를 기록한 프랑스의 2021년 경제성장률은 7.0%로 52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5년 10.3%에 육박하던 실업률 역시 2021년 8.06%로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포르투갈 역시 2010년대부터 일찍이 고용 유연화를 위한 구조 개편에 나섰다. 2012년 노동 개혁을 통해 기업들의 해고 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부당해고 보상수준 등 해고 비용을 축소하고 절차 역시 간소화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의 실업률은 2012년 16.6% 수준에서 2019년 6.7%로 하락했다. 포르투갈의 GDP 역시 2021년 4.9%에 이어 지난해 6.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日, 임금 인상 정책·기업 투자 활기…'경제 안정성' 부각=일본은 정부 주도의 임금 인상 정책에 따른 빠른 소비 회복 등에 힘입어 견조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1.6%(연율 기준)로 3개 분기 만에 플러스 전환했다. 일본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0.6% 늘면서 전 분기(0.3%)는 물론 예상치(0.4%)도 웃돌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 부당해고보상제도·기준을 개편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아울러 올해는 인금을 인상하고 이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까지 확산시키는 것을 정부의 최대 중요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일본은 올해 춘계 노사 협상에서 30년 만에 가장 높은 임금 상승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후반기에 물가 상승 둔화가 예상되는 점을 고려하면 연내 실질임금이 플러스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 덕분에 일본 증시도 호황이다. 닛케이225지수가 1990년 8월 이후 최고치를 찍은 가운데 19일 기준 일본 상장사 시가총액은 5조 8000억 달러로 전년 말보다 4000억 달러 늘었다. 시총 증가액은 같은 기간 중국 증시의 2배를 넘어섰다. 니시테쓰 히로 노무라증권 일본주식책임자는 “중국 정책과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중국 주식을 중심으로 운용하던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은 포퓰리즘 여파에 최악 인플레=반면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 정책의 역풍을 맞아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2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이날부터 2000페소 신권을 유통했다. 이전 최고액권이던 1000페소보다 큰 단위의 화폐를 새로 찍은 것으로 아르헨티나 정부는 2000페소 지폐의 가치가 최소 8.5달러 수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2000페소의 가치를 4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4월 아르헨티나 물가 상승률은 108.8%로 올해 들어 매달 상승세를 보여왔다. 이 같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는 2019년 집권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이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국민에게 현금 지급을 포함해 각종 보조금과 복지를 늘린 반면 세금은 낮췄고 이 결과 페소 가치가 급락하며 인플레이션이 악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