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 임금격차가 다시 확대되면서 정부의 노동 개혁 명분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개혁은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가로막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노동시장 약자 보호가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난제는 민간에서 임금격차를 해소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또 임금격차가 확대된 원인으로 꼽히는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얼마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내려놓게 할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고용노동부가 23일 발표한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2022년 6월 기준)에 따르면 기업 규모와 고용형태별로 임금 양극화가 심해졌다.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70.6%로 전년보다 2.3%포인트 낮아졌다. 4년 만에 다시 임금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2014년 62.2%를 기록한 후 추세적으로 보였던 개선세가 꺾인 것이다. 게다가 노동시장에서 가장 상위인 30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과 가장 열위에 있는 300인 미만 사업체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의 개선 추세도 꺾였다. 300인 이상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300인 미만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43.7%에 머무르면서 2019년(42.7%) 수준으로 돌아갔다. 더 큰 문제는 저임금근로자 비중이 16.9%로 9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임금 총량 자체가 적은 저임금근로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물가 상황에서 실질임금 감소에 따른 충격이 심하다는 우려가 높다. 고용부는 “월력상 근로 일수가 줄었지만 정규직은 월급제가 대다수여서 근로시간이 줄더라도 임금이 감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2년간 감소했던 특별 급여의 상승률이 컸고 금융·보험업에서 성과급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특별 급여는 통상적으로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번 조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킨 원인 중 하나가 노조의 유무라는 정부의 판단을 뒷받침했다. 임금 인상이 주목적인 노조에 가입한 비율을 보면 정규직은 13.5%인 반면 비정규직은 0.7%에 그쳤다. 상여금 지급률(예정 포함)도 정규직이 62.8%로 비정규직(24.1%) 대비 3배가량 된다. 전체 근로자의 14%대에 불과한 한국 노조는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몰려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이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정규직의 임금 인상 가능성이 중소기업·비정규직보다 훨씬 높고 두 층의 임금격차가 너무 확대됐다는 점이다. 질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대기업의 취업이 어려운 반면 중소기업은 인력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자리 미스매치도 만들었다.
정부는 이 같은 임금격차를 완화시키는 것을 노동 개혁의 중요한 축으로 여기고 대책 강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2월 고용부가 발족한 상생임금위원회가 임금격차 완화 대책 마련을 주도해왔다. 상생임금위 공동위원장인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임금격차 확대의 주요 원인은 임금체계의 과도한 연공성”이라며 “다음 달 이중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도적 기반, 원·하청 근로 복지 격차 해소, 협력 업체 근로자의 생산성 제고 등이 대책에 담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우려되는 점은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기득권을 빠르게 축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를 양분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반대하는 노조 회계 투명화 대책이 대표적이다. 당정은 올해 공시 시스템 구축 등 입법화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노조 회계 투명화에 대한 긍정 여론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용부가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취업자 1000명 대상) 결과에서도 88.3%는 “노조가 기부금 단체처럼 회계 공시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추가로 노조 조합원 1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48.1%는 “노조가 조합비를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는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이날 양대 노총은 이번 설문조사에 대해 비판 논평을 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노조와 협의 없이 외곽에서 ‘노조 때리기’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노동 개혁의 또 다른 축인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다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장시간 노동, 건강권 악화 우려와 맞닥뜨렸다. 이후 ‘개혁의 속도를 높이라’고 주문하던 노동 학계에서는 정부가 노동계 설득과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 늘어난 분위기다.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마치 고지에 진지를 구축한 것처럼 저항 집단이 있기 때문에 해소가 굉장히 어렵다”며 “산별노조와 직무급제를 쓰는 유럽과 달리 우리는 호봉제이면서 대기업의 전투적 노동자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