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다음 주 KB증권을 대상으로 증권사 간 채권 돌려 막기 관행에 대한 불법성 여부 등을 조사하기로 한 가운데 KB증권이 의혹 제기 내용을 강하게 반박했다.
KB증권은 지난 23일 입장문을 통해 “계약 기간보다 긴 자산으로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 운용’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KB증권은 “상품 가입 때 투자자들에게 만기 불일치 운용 전략에 대해 설명했고 고객 설명서에 계약 기간 보다 잔존 만기가 긴 자산을 편입해 운용할 수 있다는 내용도 고지했다”며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다른 증권사와 거래를 한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기업어음(CP) 시장 경색이 일어나자 2차 고객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거래를 진행한 것”이라며 “같은 해 11월 말~12월 초 해당 거래를 통해 유동성을 지원했다. 이후 회계법인과 논의해 CP를 장부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면서 손실을 인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KB증권의 이 같은 입장을 금감원의 관련 검사 전 내놓은 항변으로도 해석했다.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달 29일 이후 KB증권을 상대로 수시 검사에 돌입한다. 주요 대상은 만기 불일치 운용 행태로 알려졌다. KB증권이 기업 등 법인 고객에게 단기 투자 상품을 팔면서 장기 채권에 투자한 정황을 살필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는 3개월짜리 안전자산에 투자하겠다고 안내한 뒤 법인 고객 자금을 유치해 신용카드사·캐피털사 등이 발행한 만기 1~3년 여신 전문 금융채에 투자했다는 의혹을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만기가 도래해 고객이 환매를 요청하면 새 고객에게 자금을 받아 이를 막는 영업 방식도 금감원이 문제 삼을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또 이 과정에서 900억 원가량의 평가손실을 낸 뒤 이를 감추기 위해 하나증권과 자전거래를 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랩어카운트와 채권형 신탁 상품을 판매·운용하면서 불법 거래로 수익률을 끌어올리려 했다는 의혹이다. 자전거래는 금융회사가 자사 펀드나 계정으로 매매하는 방식이다.
KB증권은 이를 두고 “기준을 세워 중소형 법인 위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단기 자금 유동성 문제로 급여 지급이나 잔금 납입 등이 어려운 경우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억울해 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법에서는 수익자가 동일인인 경우 계좌 간 거래는 자전거래를 인정한다”며 “새 고객의 자금이 입금되는 경우에는 직전 고객의 자산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운용자산을 시장에서 매수해 대응한다. 그 외 만기가 도래하거나 환매를 요청하는 경우 고객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해 대응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금감원은 불법 채권 거래 관행을 근절한다는 목표로 이달 8일부터 하나증권의 신탁·랩어카운트 운용 실태 전반을 살피는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전거래 등 매수·매도자가 서로 짜고 사고파는 채권 통정매매가 주된 검사 대상이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하나증권 검사 과정에서 KB증권과의 자전거래 의심 정황을 파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금융 당국은 이 같은 채권 거래 행태가 하나증권과 KB증권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보고 순차적으로 주요 증권사를 모두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금감원은 3월 중순 개최한 ‘금융투자 부문 금융 감독 업무 설명회’에서 이 같은 검사 계획을 업계에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