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채권 돌려막기는 편법 매매"…증권사 "시장 유동성 공급 수단"

■금감원-증권사, 불법거래 여부 시각차
당국 "과도한 목표수익률 설정
불법·편법적 자산처분 가능성"
'만기 불일치 운용' 조사 착수
증권사는 "투자자에 피해 안줘
이익 안정성 위한 관행" 주장

이복현 금감원장. 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증권사 간 채권 돌려 막기 관행을 대대적으로 들쑤시자 금융감독원과 증권 업계가 ‘불법 거래’ 여부를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채권 거래 시 ‘만기 불일치 운용 행태’에 대해 증권사들이 쉽게 돈을 버는 편법 매매이자 시장 부실을 유발할 뇌관으로 보는 금감원의 시각과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보는 증권사 간 입장이 크게 나뉘는 분위기다.


금감원은 24일 예정에 없던 ‘증권사 랩어카운트·신탁 검사 진행 상황’ 설명 자료를 내고 “올해 계획 중 하나로 증권사의 불건전한 영업 관행 등에 대한 테마 검사를 선정·발표한 바 있고 현재 2개사에 대해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고 공표했다. 두 증권사는 이달 8일부터 조사에 돌입한 하나증권과 최근 검사 대상이 된 KB증권으로 알려졌다. 주요 조사 대상인 만기 불일치 운용은 높은 수익률을 낼 목적으로 단기 랩어카운트·신탁 계좌에 유동성이 낮은 고금리 장기 채권이나 기업어음(CP)을 편입하는 자산 관리 방법이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 대해 “증권사들이 만기 불일치 운용으로 과도한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면 자금 시장이 경색되거나 대규모 계약 해지가 발생했을 때 연계 거래 등 불법·편법적 방법으로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면서 “이는 법상 금지하는 고유재산과 랩어카운트·신탁재산 간 거래, 손실보전·이익보장 등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이날 입장 발표는 “만기 불일치 운용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KB증권의 공식 항변과 맞물려 묘한 해석을 낳았다. 검사의 당위성을 두고 당국과 업계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앞서 금감원은 2월 초 업무계획을 공개하면서 증권사들의 채권 파킹·자전거래 등 불건전 영업 행위와 위험 요인을 검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전거래는 금융회사가 자사 펀드나 계정으로 매매하는 방식을, 파킹은 매수 채권을 장부에 곧바로 기록하지 않고 펀드매니저가 직접 매수하거나 다른 곳에 매도하는 거래를 뜻한다. 금감원은 3월 16일에도 금융 감독 업무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방침을 증권사들에 재차 강조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 동향, 환매 대응 특이사항 등을 면밀히 감시했다”며 “회사별 수탁액과 수익률 등 기초 자료, 시장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사 대상 회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개사 외에도 검사 대상으로 선정된 회사에 대해 순차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이 대대적인 검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말 발생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레고랜드의 사업 주체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지급보증을 강원도가 거부하자 지난해 4분기 채권시장이 큰 혼란에 빠진 바 있다. 금융 당국은 증권사들의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그대로 두면 자금 시장이 또 경색될 경우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만기 불일치 운용은 하나·KB증권만의 관행이 아니라 이익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업계 전반의 오랜 거래 방식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불법성이 없는 데다 금리가 오르든 내리든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KB증권도 입장문을 통해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다른 증권사와 거래하지 않았다”면서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자 2차 고객 피해를 방지하려고 지난해 11월 말~12월 초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거래를 진행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업계에서는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증권사들이 1분기 크게 호전된 실적을 올리자 ‘이자 장사’에 대한 당국의 불신이 폭발했다는 추정도 나왔다. 실제로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하나증권은 지난해 4분기 순적자에서 올 1분기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키움증권(039490)은 순이익이 한 분기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장단기 채권금리 차로 증권사가 쉽게 돈을 번다는 인식이 검사 결정에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며 “각종 거래마다 규제하면서 어떻게 해외에서만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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