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러시아서 혁명 일어날 판"…용병기업 수장 경고 왜?

프리고진 “이대로면 러시아에 혁명 일어날 수도”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이끌며 우크라이나 침공에 가담한 ‘푸틴의 해결사’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혁명으로 인한 ‘체제 전복’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우리는 러시아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있다”고 경고했다.


2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CNN 등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친러시아 블로거 콘스탄틴 돌고브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우크라이나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중 하나"라며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은 고도로 조직화되고, 훈련됐으며 정보력은 최고 수준이다. 소련군이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든 어떤 군사 시스템도 똑같이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당초 러시아의 목표였던 ‘우크라이나 탈군사화’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이어 "수치로 말하면 전장 초기 우크라이나군은 탱크 500대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5000대가 됐고 군 병력은 2만명에서 40만명으로 늘었다"고 강조했다.


프리고진은 그간 러시아 군부를 비판해 오긴 했지만 이번 발언은 러시아군의 불리한 전세와 자국 내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그는 "러시아 방위군은 어떤 형태로든 저항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22일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인 러시아 남서부 벨고로드주에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반군이 자국 국경 지역을 공격해 혼란을 겪는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신에 따르면 이번 공격에 가담한 무장세력은 ‘러시아자유군단’(FRL)과 ‘러시아의용군단’(RVC) 소속 민병대원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군의 정보분석 능력에 대한 분노와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AP 연합뉴스

그는 또 두바이에서 쇼핑하는 모습이 목격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딸을 거론하며 “엘리트의 자녀가 크림을 바르는 모습을 인터넷에 자랑할 때 서민의 자식들은 산산조각이 난 시신으로 관에 실려 돌아온다”고 러시아의 기득권층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격차는 군인이 들고일어나고 그들이 사랑한 이들이 뒤따랐던 1917년 러시아 혁명처럼 마무리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17년 발생한 러시아 혁명은 전제군주국이었던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 정권이 수립을 이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당시와 같은 체제 전복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프리고진은 이날 바흐무트 전투에서 사망한 바그너 용병의 수가 2만 명이라고 공개했다. 러시아는 이곳에서 우크라이나와 10개월 넘게 소모전을 벌여 사상자가 상당할 것이란 추정이 나왔으나 러시아 군 당국은 정확한 피해 인원을 함구해왔다. 러시아의 주장처럼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점령했더라도 전략적 가치가 모호한 곳에 너무 많은 병력과 탄약을 고갈시켰다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이다. 다수의 전사자가 속출하자 유족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게 프리고진의 지적이다.


그는 난국을 타개하려면 ‘북한식 전체주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우리는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날 매우 힘든 전쟁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계엄령을 내려야만 한다. 불행히도 우린 새롭게 동원령을 내려야 하고, 탄약 생산을 늘리는데 일할 수 있는 모든 이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새 도로와 기반시설 건설을 중단하고 오직 전쟁을 위한 일만 해야 한다. 러시아는 몇 년간 북한처럼 살아야 한다. 국경을 닫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이긴다면 뭐든 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브게니 프리고진(뒷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젊은 시절 사기와 성매매 알선 등 범죄로 교도소를 전전하던 프리고진은 1980년대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눈에 들면서 신분상승을 거듭해 왔다.


그는 2014년에는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세우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준동한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고 시리아와 리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내전에 개입해 러시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보를 보였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참전했다. 지난해 여름 러시아 정규군이 사기 악화와 병력 부족에 시달리자 러시아 각지의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용병으로 데려와 병력 공백을 메웠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과 성폭행, 포로 살해 등 전쟁범죄를 자행해 러시아의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고 바흐무트에서는 훈련과 장비가 미비한 죄수 출신 용병들을 총알받이로 앞세우는 인해전술을 고집해 대규모 인명 손실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지난해 9월 징집한 예비군 30만명의 훈련과 무장을 마쳐 용병의 필요성이 줄어들자 러시아 국내에서 그와 손을 끊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에 프리고진은 쇼이구 국방장관을 포함한 군 지휘부를 비난하고 대외활동을 강화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숙청을 모면하려는 행보를 이어왔다.


결국 1년에 걸친 소모전 끝에 바그너그룹이 최근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하면서 프리고진은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러시아 정치전문가 드미트리 오레쉬킨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고전 중인 가운데 그나마 프리고진이 바흐무트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정치적 발언권이 생겼다”라며 “만약 이번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그는 (자신이 헐뜯었던 엘리트들에 의해) 갈가리 찢겼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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