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메모리얼 데이 연휴(미국의 현충일·현지 시간 5월27~29일)에는 4200만명의 미국인이 여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기록적인 여행 수요를 보일 이번 여름 휴가 시즌의 서막이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 시즌과는 또다른 요인들이 재충전을 위해 휴가를 떠나는 이들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비싼 항공료 뿐 아니다. 근본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누렸던 원격 근무가 끝나면서 사무직 근로자들이 누리던 자유가 예전 같지 않다.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이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원격 근무(WFA·Work From Anywhere)’ 주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사무실 출퇴근 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회사에 따라 약 2주에서 4주 가량 특정 기간에 한해 직원들이 원하는 곳 어디에서든 원격 근무를 즐길 수 있도록 보장하는 근무 형태다.
4,000개가 넘는 기업의 원격 근무 정책 연구한 스쿠프테크놀로지스의 로브 새도우 최고경영자(CEO)는 “원격근무 주간은 아직 흔한 제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최근 들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비자, 마스터카드와 같은 유명 금융 서비스 기업 대표적이며, 알파벳의 구글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 파타고니아, 심지어 정부 지원 모기지 대출 기관인 프레디 맥에 이르기까지 유명 기업들이 이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직원들은 일반적으로 일 년 중 가장 편리한 시기에 원격근무 주간을 사용할 수 있다. 씨티그룹은 지난해 8월과 12월의 마지막 2주 동안 직원들이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만 프레디 맥과 같은 일부 조직은 WFA 기간을 한 꺼번에 연속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제한하기도 한다.
새도우 CEO는 “원격근무 주간을 시행하는 회사들은 재택 근무 종료에 따른 직원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사무실 출근 의무를 강화하는 동시에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직원들에게 주요 공휴일과 여름 여행 시즌에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사무실 근무 체제를 강화하는 취지다. 미국 기업들은 인력 공급이 부족한 현재의 고용 시장 여건을 고려할 때 원격근무 주간을 도입하는 것이 최고의 인재를 유치하고 또 유지하는 저렴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프리스위라지 초두리 교수는 “먼 지역이나 먼 나라에 부모, 가족, 친구가 있는 근로자에게는 한 달 내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마스터카드의 경우 회의가 없는 날이나 금요일 유연 근무제와 같은 다른 혜택과 함께 4주간의 원격근무 주간을 제공하는 것이 고용주로서 차별화할 수 방법으로 판단하고 있다. 마스터카드의 최고 인사 책임자(CPO)인 마이클 프라카로는 “팬데믹 기간에도 효과가 있었다면 지금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런 제도는 은퇴연금(401K)와 같은 재정적 복지 외에도 직원들이 원하는 혜택의 일부”라고 말했다. 프라카로 CPO 스스로도 지난해 시행된 이 정책을 활용해 2주 유급휴가와 2주 원격근무 주간을 합쳐 호주에 있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왔다.
물론 이 제도를 시행하는 데는 실무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요소도 있다. 직원들은 원격근무 주간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하고, 해외 근무시 발생하는 세금 관련 사항을 직원들 개개인이 이해하고 처리해야 한다. 아울러 회사와 직원간 신뢰도 구축돼야 한다. 프라카로 CPO는 “4주 동안 발리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직원들이 성과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정 기간의 원격 근무 주간을 제공할 경우 에어비앤비 같은 기업처럼 완전한 원격 근무를 도입하지 않고도 유연성을 원하는 직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 구직 사이트 플렉사(Flexa)에 따르면 완전 원격 근무 수요는 계절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 완전 원격 근무를 시행하는 일자리 검색량은 지난해 여름 이후 줄어들어 12월에는 전체 검색의 약 2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후 3월에는 60% 수준으로 반등했다.
홍보 회사인 레러번스인터내셔널의 CEO인 수잔나 로스노프스키는 팬데믹 이후 사무실 근무 체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주 3일의 하이브리드 근무, 연 중 2주의 원격근무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는 “우리는 일종의 타협안을 만들었다”며 “이 계획은 우리 직원들과 그들의 시간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로스노프스키 CEO는 “재택근무는 생산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는 너무 많은 재택근무가 비생산적일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며 “(타협안은) 현대인의 삶을 수용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