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술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산업 범위를 확대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푸드테크 등을 아우르는 ‘그린바이오’와 기존 석유화학 소재 대신 식물·미생물 등 재생 가능한 자원을 활용해 친환경 연료나 플라스틱 대체 제품을 생산하는 ‘화이트바이오’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는 취지다.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장은 1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3’의 세 번째 세션 ‘차세대 먹거리 그린바이오&기후위기 해결 화이트바이오’에 기조강연자로 참석해 “농업은 기본적으로 후방 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생명공학 등 다른 분야의 기술을 적용하고 전방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한다면 고부가 그린바이오 신산업이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농업을 응용하는 지점은 식품뿐 아니라 백신 등 의료용 물질까지 넓어질 수 있다”며 “적용 산업도 환자용 약품에서부터 기능성 화장품, 반려동물을 위한 ‘펫푸드’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과거 농업의 가치가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영양을 충족하는 데 있었다면 이제는 이를 넘어 환경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고 각자 원하는 메뉴와 제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첨단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학교수는 ‘교차 경제’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무언가를 취하고 만들고 낭비하는 데 그치는 ‘선형 경제’, 재활용을 시도하지만 많은 지원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점이 있는 ‘순환 경제’ 모델을 넘어 재료 전환을 통한 가치 증대를 꾀하는 게 특징이다. 조 교수는 고순도 석영→실리콘→반도체로 이어지는 제조 과정을 예로 들며 “재료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가 극대화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교차 경제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고 지속 가능성 그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제한된 자원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활용이 아니라 대체해야 하고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응용해야 한다”고 했다.
로드니 루오프 IBS 다차원탄소재료 연구단장 및 UNIST 특훈교수는 자급자족 경제에 대해 발표하며 “한국은 네덜란드인이 보기에는 일조량이 많은 국가”라며 “식품 온실 생산을 늘린다면 자급자족 시스템을 향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은 기존 화학 소재 대신 식물·미생물·효소 등을 활용해 제품이나 연료 등을 생산하는 화이트바이오 산업의 성과를 제시했다. 고부가가치 사료용 아미노산 첨가제인 ‘발린’, 기존 붉은 색소의 원료인 연지벌레 없이 색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카르민산’ 연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부총장은 “미생물을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세포 공장으로 쓰면서 바이오 제조의 원동력이 됐고 급속 발전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석학들은 그린·화이트 등 첨단바이오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계와 기업에서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고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낼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혁신 생태계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폴 류 미국 국립보건원(NIH) 인간유전체연구소 연구부소장은 NIH가 미국의 첨단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 차원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류 부소장은 “NIH에 편성된 올해 예산은 492억 달러(약 65조 원)에 달하는데 이 기금의 84%는 외부 연구기관이나 학계를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며 “NIH가 바이오 생태계 구축에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덕분에 연방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받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구 성과물이 산학 협력과 기술의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을 보장하는 작업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르데카이 셰베스 전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도 “정부가 학계와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며 “기술 개발 과정에 실패가 발생해도 이를 정부가 함께 부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셰베스 전 부총장은 이스라엘의 사례를 언급하며 교육 시스템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이스라엘 교육 체계는 아이들의 독립적인 사고와 호기심을 유도한다”며 “정부가 아이들이 창의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핵심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달리기를 하다 쓰러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실패를 용인하고 개인이 생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인재가 탄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