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이 흐릿…노안이려니 방치하면 시력 잃을수도

[고령화에 '황반변성' 급증]
망막 변성으로 '중심 시력' 저하
자외선 노출·비만 등 원인 꼽혀
2021년 환자 수 40만명에 육박
60세 이상 비중 83% 달하는데
제때 치료 안되면 시력회복 한계
고령층 안저검사 등 정기검진을

실명 위험이 높은 황반변성은 눈이 침침하고 시력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유사한 탓에 노안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미지투데이

#오상식(48·가명)씨는 요즘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되는 바둑 경기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회사에서 오씨의 집까지는 버스로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서둘러 퇴근해도 '바둑TV' 중계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는데 회사 후배가 유튜브 계정을 알려준 뒤부터 퇴근길이 한결 즐거워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눈이 침침하면서 스마트폰 화면이 뿌옇게 보이고 화면 속 바둑판 무늬가 휘어져 보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요즘은 노안이 일찍 온다더니’ 오씨는 며칠 전 노안 때문에 안경을 새로 맞췄다던 회사 동기를 떠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간단한 문서 작업조차 불편할 정도로 시야가 흐릿해지자 심란한 마음이 커졌다. 어느날 퇴근길 버스 창 밖에 보이는 간판 직선이 휘어져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자 덜컥 겁이 난 오씨는 황급히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황반변성’ 진단을 받고 항체주사 치료를 시작했다.



◇ 고령화에 황반변성 환자 급증세…진단받은 환자만 40만 명 육박

안구의 가장 깊숙한 부위에는 카메라의 필름 역할을 하는 망막이 있다. 황반은 망막의 중심에 빛과 색상을 감지하는 시세포가 밀집되어 있는 부위다. 시력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위로 황반에 불필요한 혈관이 자라거나 출혈 등의 변성이 일어나면 중심 시력이 저하된다. 이를 흔히 황반변성이라고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연령 관련 황반변성(AMD·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이다. 황반변성의 원인은 가족력과 흡연, 잦은 자외선 노출, 비만 등 복합적 요인이 꼽히는데 노화가 가장 주요한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서 황반 부위가 소실 또는 퇴화돼 기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 사회는 황반변성 유병률이 급증하는 추세다.



사진 설명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황반변성 진료 인원은 2017년 16만 6007명에서 2021년 38만 1854명으로 4년새 130% 증가했다. 2021년 진료인원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70대가 32.9%(12만 5641명)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31.6%(12만 576명), 80세 이상이 18.6%(7만 1164명)의 순이었다. 60세 이상이 전체 환자의 83.1%를 차지해 전형적인 노인성 질환의 특성을 나타낸다. 황반변성 환자 수 증가는 고스란히 사회적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황반변성 환자의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2017년 1095억 원에서 2021년 3170억 원으로 4년새 3배 가까이 뛰었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유력시되는 우리나라는 황반변성 대란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 시력저하 속도 빠른데…한 눈만 나빠지면 알아차리기 어려워

AMD는 진행 정도에 따라 건성(dry)과 습성(wet)으로 나뉜다. 대개 건성으로 먼저 발병한 후 습성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건성 단계에서는 시력 저하가 크지 않아 환자가 질환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황반 밑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기는 습성 으로 진행되면 신생혈관이 황반부에 삼출물이나 출혈 등을 일으켜 시력이 악화된다. AMD는 눈이 침침하고 시력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유사한 탓에 노안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AMD는 녹내장, 당뇨망막병증과 함께 한국인의 3대 실명질환 중 하나다.


치료 받지 않은 AMD환자 4명 중 3명은 3년 내 시력이 0.1 미만으로 감소한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물체 중심에 안 보이는 부위가 생기는 ‘중심 암점’과 사물 또는 직선이 휘어져 보이는 ‘변형시’는 황반변성을 의심해야 할 대표 증상이다. 암슬러 격자(그림)를 이용해 선이 휘거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스스로 검진해 보는 것도 조기 발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같은 증상들은 두 눈으로 볼 때는 자각하기 어렵다. 한쪽 눈을 가리고 한 눈씩 검사해 보는 것이 좋다.



황반변성의 자가진단에 쓰이는 암슬러 격자. 30cm 거리에서 한 눈을 감고 바라봤을 때 오른쪽처럼 보인다면 황반변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사진 제공=한국망막학회

김성우 호랑이안과 원장(한국망막학회 학술이사)은 “황반변성은 한쪽 눈부터 증상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양쪽 눈을 사용하다 보니 변화를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며 “한쪽 눈의 증상이 중등도 이상으로 악화된 뒤에야 병원을 찾을 경우 시력 회복에도 한계가 있고 예후가 좋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 시력 손상되면 완전한 회복 어려워…일찍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일단 AMD가 발병한 후에는 이전 시력을 완전히 회복할 수 없다.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다. AMD로 진단되면 주로 망막 속에 비정상적인 신생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주사를 안구에 투여하는 치료가 이뤄진다. 신생혈관의 발병 원인 중 하나인 혈관내피세포 성장인자(VEGF-A)를 억제하는 기전이다. 투여 주기는 평균 1~4개월마다 1회 정도로 치료제에 따라 다르다. 완치가 어렵고 지속적으로 시력 기능이 떨어진다는 질환의 특성상 꾸준한 치료가 필수다.


김 원장은 “현재 국가건강검진에는 안저검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60대 이상 노년층은 증상이 없어도 1~2년에 한 번씩 안저검사를 포함한 안과 정기검진을 받고 이상이 느껴지면 즉시 안과를 찾아 형광안저혈관조영술 등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우(왼쪽) 호랑이안과 원장이 환자에게 황반변성에 대해 설명 중이다. 사진 제공=호랑이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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