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나빠요” ‘외노자' 한마디에…中企사장들 벌벌 떤다

입국 한두 달에 외국인 사업장 변경 요구
“지방에 있기 싫다, 친구랑 있고 싶다”
거부하면 태업·꾀병·무단이탈 보복 일삼아
외국인에 찍힌 업체 사장은 SNS서 ‘블랙리스트'
“성실·장기 근무자에 체류연장 인센티브 줘야”

외국인들이 국내로 입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입국하자마자 온갖 핑계를 대며 다른 사업장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있는 수도권, 대도시로 가려는 거죠. 영세 업체 입장에선 외국인 고용에도 적지 않은 비용을 씁니다. 최소 1~2년 사업장 변동을 허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북 김제시 W 사업장)


“최근 캄보디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한 명이 쓰러졌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꾀병이었습니다. 계약 해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이런 방식으로 보복합니다. 주변에 비슷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경기 화성시 D 업체)




최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외국 인력 정책토론회’ 모습. 이완기 기자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근무 태도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비전문인력(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하자마자 친구들과 같이 일하고 싶다는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시도하고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태업 등으로 보복하는 사례들이 나타나면서다. 이에 입국 초기 외국인의 경우 근무지 변경을 최소화 해야 하다는 목소리가 기업인들 사이에서 높아지는 양상이다.




지난달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국가산업단지의 한산한 모습. 안산=오승현 기자

최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외국 인력 정책 토론회’에서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주물업체 대표는 “주물 업계는 근로자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었으며 젊은 인력을 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외국인 근로자 고용이 불가피한데 입국하자마자 업무가 쉬운 업종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동의하지 않으면 태업으로 일관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 해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업체 대표도 “동남아 외국인 1명을 고용했는데 일한 지 얼마 안돼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더라”면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태업을 했고 결국 무단이탈했다”고 했다.


다른 업체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는 사업장의 근무 조건을 비롯해 현장 사진 등 사전에 확인하고 근로 계약을 체결한다”면서 “그런데 오자마자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건 일종의 계약 위반 아니냐”고 했다. 또 “특히 요즘은 외국인 근로자들 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발하다”며 “자신들의 요구가 먹히지 않으면 온라인에 비방하는 글을 올려 외국인 채용을 어렵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이런 목소리는 통계 수치로 확인된다. 최근 중기중앙회가 중소벤처기업연구원과 E-9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5인 이상 중소기업 500개 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8.2%가 “6개월 이내에 계약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계약해지를 거절한 중소기업의 85.4%는 태업, 꾀병, 무단결근 등 행동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방 소재 기업이나 영세한 기업들에서 더 자주 발생하고 있어 인력난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설문에 응답한 기업 중 81.2%가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시 대체 인력 구인을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꼽았다. 비용 손실도 57.1%나 됐다. 한 기업인은 “설문조사를 5인 미만의 영세 업체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더 심각하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9 비자로 입국하면 사업장 변경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계약 만료 후 갱신을 거절할 때 근무지 변경이 가능하다. 또 휴업, 폐업, 근로조건 위반 및 부당한 처우 등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없을 때도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업체 입장에서는 설득하기 힘든 이유로 사업장 변경과 함께 계약 해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계약 해지 이유로 ‘친구 등과 함께 근무하고 싶다’가 38.5%로 가장 많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월 31일 경기도 포천시 농가를 방문하여 외국인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모습. 사진=고용노동부


중소기업인들을 외국인 사업장 변경과 관련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민선 중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데도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시도할 때 사업자에게도 최소한의 대응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며 “사용자 귀책이 아닌 경우 초기 일정 기간은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왼쪽 세 번째) 법무부 장관 등이 지난 5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오승현 기자


장기근속자 위주로 체류 기간을 연장해주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은 “사용자 귀책 사유가 없는데도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고 태업하는 부당 행위 근로자는 본국으로 출국 조치하는 등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국회에 적극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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