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오아시스가 없다~면! 어떻게 걷겠어. 어떠~케!
환상도 에너지가 된다~면! 나쁠 거는 없죠. 나쁠~건!
뮤덕(뮤지컬 덕후)이라면 누구나 ‘첫 뮤지컬’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게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베카 등 대극장에서 주로 공연되는 뮤지컬일 수 있겠죠. 웅장함과 화려함, 그리고 좌중을 압도하는 넘버…한 번 보고 나면 뮤지컬 자체보다 이 공연과 배우의 매력에 빠져 같은 공연을 두 번, 세 번 보게 됩니다. 이번주부터 ‘어쩌다, 커튼콜’은 인생 뮤지컬이 인생 뮤지컬이 된 이유를 하나씩 소개해볼까 합니다. 첫 뮤지컬은 저의 첫사랑 같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입니다. 제목이 생소한 분들도 많겠지만 사실 유명한 작품이죠. 공유와 임수정 배우가 주연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니까요.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스타가 된 배우 오나라. 저는 이 분을 사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봤죠. 어디냐고요? 대학로의 한 소극장입니다. 최근 한 후배가 SNS에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본 사진을 올려놓았는데요.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이, 이건 뭐야? 공연장이 너무 컸거든요. 좌석도 나름 2층이 있는 소극장이 아닌 극장이었습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2006년 서울 대학로의 예술마당 1관에서 처음 막을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졸업작품이었죠. 제가 당시의 기사를 찾아봤는데요 “2006년 6월 초연, 객석 점유율 92%로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라고 보도합니다. 초연을 하자마자 대학로 공연에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입니다.
제가 2006년에 본 ‘김종욱 찾기’의 배우는 오나라-오만석-전병욱 배우였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김종욱 찾기에는 ‘멀티맨’이 등장하는데요. 이 분이 1인 22역을 합니다. 남자 주인공 오만석 배우, 여자 주인공 오나라 배우를 제외한 모든 역할을 전병욱 배우가 혼자 다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공연 시작 전 ‘휴대전화를 꺼주세요’라고 말하는 임무부터 극중 등장하는 모든 배역을 한 배우가 맡고 있었죠. 아니, 저 사람은 또 나와? 응? 또 나와? 앗?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연을 본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사실 첫 공연 때는 이 멀티맨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공연을 본 후 한동안 계속해서 오나라 배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종욱 찾기의 넘버는 ‘나라와 만석의 Love Theme’인데요. 한동안 제 휴대전화 연결음이었고, 노래방에서도 자주 불렀죠. 오나라 배우를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럽고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운 모든 걸 혼자 다 하잖아요. 김종욱 찾기 속 ‘오나라’를 보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아직 오나라 배우의 사랑스러움을 반 밖에 보지 못한 겁니다. 원래도 유명했지만 스카이캐슬로 오나라 배우를 모두가 다 알게 됐을 때 친언니가 성공한 것 마냥 얼마나 기뻤던지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김종욱찾기의 최대 매력은 손발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오글거리는 대사와 스토리입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죠. 회사를 그만둔 후 첫사랑을 찾아주는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를 창업한 남자 주인공이나, 9년 전 인도 여행 중 한 번 본 첫사랑을 찾겠다고 나서는 여자 주인공 모두 현실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죠. (게다가 여자 주인공은 인도철학을 전공했고 전직 불교신문 기자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여자 주인공의 첫사랑을 찾다 말고 ‘이제는 꿈만 꾸지 않겠어, 그이가 바로 나의 데스티니(운명)’라고 노래 부르며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말도 안되는 설정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저는 대학 때 인도 여행을 알아보기도 했다면 믿어지시나요. (가지는 못했지만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자꾸만 등장하는 라떼)는 인도 여행이 유행이었는데 아마 작가님도 인도에 로망이 있으셨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명장면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라: 예?! 아이 근데 그 바텐더 아저씨가 우리 애인 어쩌고저쩌고 놀리지 않을까요?
만석: 놀리면 어때요? 우리만 재밌으면 되지.
이 오글오글 거리는 대사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죠. 남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게 뭐가 중요할까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텐데 말이죠. 그 후로 한동안 김종욱 찾기에 빠져 매일 넘버를 흥얼거리고, 홍보대사처럼 연애를 시작한 지인들에게 항상 ‘연애해? 대학로에 가서 김종욱을 봐'라고 추천하곤 했습니다. (연애를 한다면 꼭 봐야죠. 필수 데이트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김종욱 찾기를 좋아하고 애정했던 ‘라떼 피플’이 저 하나는 아니었나봅니다. 17년의 시간이 지나 김종욱 찾기는 이제 한국 뮤지컬의 자존심이 되었습니다. 김종욱 찾기가 세운 기록을 볼까요?
1.관객 120만 명 돌파
최근 국내 창작 뮤지컬 ‘영웅’이 관객 100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대형 창작 뮤지컬 중 100만 명을 돌파한 작품은 ‘영웅’과 ‘명성황후’ 뿐입니다. 명성황후는 1995년 초연 이후 12년 만인 2007년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죠.
김종욱 찾기는 비교적 작은 극장에서 시작해 소수의 배우와 제작진으로 2006년부터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현재까지 오픈런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꾸준히 공연 했고, 기간도 길기 때문에 다른 작품과 직접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2019년 초연 12년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건 국내 창작 뮤지컬 역사에서 꽤 대단한 기록입니다. 대학로 뮤지컬 중에는 올해 1월 ‘빨래’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죠.(이 작품도 안 보셨다면 두 번 보세요!)
2.최초의 중국 진출 K-뮤지컬
처음으로 중국에 라이선스를 판매한 공연이기도 합니다. 현재 대학로에 김종욱찾기를 보러 가면 대형 내한공연에서나 볼 수 있는 자막 스크린을 볼 수 있는데요. 중국과 일본 관광객에게는 김종욱찾기가 하나의 관광코스라고 해요. 때문에 자막 서비스를 지원합니다. 나아가 김종욱 찾기는 국내 뮤지컬 중 최초로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종욱찾기는 2010년 영화로 제작됐는데요 대본을 쓴 장유정 작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죠.
김종욱 찾기가 배출한 스타도 많습니다. 사실 김종욱찾기는 스타 등용문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제가 오나라 배우만 예찬했지만 엄기준, 진선규, 신성록, 김무열, 강동호 등이 모두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거쳐간 배우들입니다. 이렇게 무턱대고 기록을 소개하는 이유는 제가 덕후이기 때문입니다. 덕후들은 아마 이 마음 잘 알 거예요. 내가 처음으로 발굴한 어떤 콘텐츠나 아이돌이 점점 커가는 모습. 성공한 아이돌의 초창기 모습을 나만 알고 있는 뿌듯함. 저는 ‘김종욱 찾기’의 성장을 볼 때마다 그런 뿌듯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