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직접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외환수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한국은행 진단이 나왔다. 당국이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는 국민연금과 원자재를 달러로 구매하는 일부 공기업에 이어 국내 대기업들도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4일 한은 국제국 자본이동분석팀은 ‘최근 해외 직접 투자 증가 배경 및 외환부문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외 직접 투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만한 증가세를 나타냈으나 2021년 이후 증가 규모가 큰 폭 확대됐다.
한은에 따르면 수익 재투자를 제외한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는 2021년 494억 달러로 전년 대비 81.4% 증가했다. 지난해는 사상 최대인 502억 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3월 중 89억 5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이후 2년 3개월 만에 1085억 5000만 달러나 해외 직접 투자가 이뤄졌다.
한은은 해외 직접 투자가 증가한 것은 연기금 등의 대체자산 투자 증가, 미·중 경제분쟁 심화, 기업들의 신기술 확보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했다. 해외 직접 투자를 업종별로 살펴보면 금융·보험업과 제조업, 지역별로는 북미를 중심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미국 보호무역 확대와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영향으로 현지 시장에 진출하려는 목적으로 제조업의 해외 직접 투자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미래 신성장 산업의 핵심 기술 확보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문제는 현재 외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해외 직접 투자 증가가 외환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상품수지로 나타나는 기업들의 무역을 통한 외화자금 수령액은 2019년 이후 크게 줄어든 반면 해외 직접 투자로 인한 외화자금 지출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이 외환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여유 외화자금도 줄었다. 연기금이나 금융기관으 해외 대체 자산 투자 증가도 외환 수급 불균형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은은 미·중 경제분쟁 지속, 첨단산업 경쟁 가속화 등으로 앞으로도 기업의 직접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 투자 활동으로 실물 부문에서 외환 수급 변동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인센티브 등을 통해 해외 직접 투자 증가가 외환 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들이 현물환 시장이 아닌 해외 증권 발행, 현지금융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을 늘리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외국인이 체감할 수 있는 국내 투자 환경 개선 등을 통해 외국인의 국내 직접·증권투자 자금 유입을 확대할 수 있는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