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다 바꿨더니' 삼성, 시총 200배로…JY '뉴삼성' 속도낸다 [biz-플러스]

7일 삼성 '신경영선언' 30주년
'양보다 질' 대대적인 체질 개선
국내 1위서 글로벌 1위로 도약
반도체 초격차 등 4대전략 구상
미래 먹거리·상생 경영 등 화두
별도 행사없이 사업 점검 집중

이건희(왼쪽) 삼성 선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전 세계 임원들을 불러 모아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하며 한 말이다. 삼성 재도약의 시초가 된 이른바 ‘신경영 선언’(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7일 30주년을 맞는다. 당시 ‘국내 1등’ 수준이던 삼성은 30년의 세월을 거쳐 ‘글로벌 1등’으로 도약했다. 다음 단계는 지난해 10월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취임한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맡는다. 이재용 회장은 1등 기업으로 영속할 ‘뉴삼성’의 새로운 비전을 선언하기 위한 담금질에 나선 상태다.



3조 그룹이 626조 규모로…"기업 혁신의 표본"



*시가총액은 2023년 6월 2일 종가 기준. 전자 임직원 수는 2021년 기준.

이건희 회장의 일갈과 함께 삼성은 당대에 넘볼 수 없는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장 실적의 ‘단위’가 달라졌다. ‘신경영 선언’을 발표한 1993년 3조 1000억 원 수준이던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현재 626조 6000억 원(상장 계열사 16곳, 2일 종가 기준)으로 200배 넘게 커졌다. 매출액은 41조 원에서 466조 8000억 원으로, 영업이익은 4900억 원에서 55조 6000억 원으로 각각 성장했다.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성장 폭도 극적이다. 1993년 영업이익(세전) 5000억 원 수준의 ‘우물 안’ 회사였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43조 3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세계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6만 8000명 수준이었던 임직원 수는 26만 6000명으로 크게 네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11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 조사에서 삼성전자는 브랜드 가치 877억 달러(약 115조 원)로 글로벌 5위에 올랐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직장’으로 3년 연속 선정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삼성의 성장에 대해 “삼성의 신경영 선언은 기업 혁신의 교본이자 오너 경영의 장점이 무엇인지 보여준 역사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양적 성장은 그만’…'질' 화두로 ‘초격차’ 전략 구축

신경영 선언의 핵심은 품질 부문의 ‘파괴적 혁신’이다. 이건희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고 대대적인 혁신을 요구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내수 기업에 가까웠던 삼성은 원단·설탕·가전제품 등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제품을 주로 생산하면서 양 위주의 팽창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1993년 이건희 회장은 양적 성과에 집착하던 당시의 관행을 벗어나 ‘질 중시 경영’을 주문하면서 대대적인 혁신을 그룹 전체에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제품 품질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보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시가 500억 원 상당 불량 휴대폰과 팩스 15만 대의 ‘화형식’을 했던 사례는 체질 개선 의지의 상징적 사례다.


‘질 경영’은 곧바로 삼성그룹 전체로 퍼지면서 글로벌 그룹으로 도약하는 핵심 무기가 됐다. ‘화형식’의 아픔을 겪은 삼성전자 휴대폰은 절치부심 끝에 2012년 마침내 세계시장 1위에 올랐다.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성장한 반도체에서는 1994년 세계 최초로 256Mb(메가비트) D램을 개발했고 1996년에는 1Gb(기가비트) D램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설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여개 품목에서 당당히 ‘세계 1위’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의 혁신은 수치적인 성과 뿐 아니라 폐쇄적이었던 국내 기업 문화마저 대폭 변화시켰다. 이건희 회장은 국내 최초 대졸 여성 신입 사원 공채 실시(1993년), 공채 학력 제한 철폐(1995년), 7·4 출퇴근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등 기업 문화의 대대적인 혁신을 이끌며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제는 JY 차례…'4대 전략'으로 ‘뉴삼성’ 박차



이재용(왼쪽 세 번째) 삼성전자 회장과 일론 머스크(왼쪽 네 번째) 테슬라 CEO가 5월 10일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선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새로운 ‘뉴삼성’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신경영 선언에 깔린 질적 초격차 전략을 계승하면서 달라진 기업 환경에 맞춰 기업 영속을 위한 새로운 전략 마련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현재 삼성이 당면한 상황은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마주했던 위기 못지않은 비상 상황이다. 글로벌 첨단 시장 경쟁이 국가 간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경제위기까지 겹쳤다.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는 올해 신경영 선언 30주년에도 별다른 행사 없이 조용히 향후 사업 전략을 점검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30년간 성장 공식이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넘어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체질을 바꾸는 게 핵심 과제다. 이 회장은 지난 10월 회장에 취임한 뒤 내부적으로는 대부분의 그룹 내 사업부를 직접 챙기며 임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웠고, 대외적으로는 최대 장점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하면서 사업 기회를 엿보는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지난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경제사절단 일정을 소화한 뒤 미국 동·서부를 횡단하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주요 글로벌 기업 CEO 20여 명을 두루 만나고 돌아왔다.


‘뉴삼성’을 위한 이재용 회장의 구상은 크게 △수성(반도체) △신사업 개척(바이오) △차차기 먹거리 사업 발굴 △상생 경영 등 ‘4대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핵심 주력 산업인 반도체에서는 메모리의 독주 체제를 더욱 굳히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등 시스템반도체 점유율 확보가 과제다. 2042년까지 300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등 경쟁자가 넘볼 수 없는 수준으로 달아나겠다는 구상이다.


바이오 사업은 이재용 회장이 직접 챙기면서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 출장에 나선 이재용 회장은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J&J)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바이오 업계 거물들과 연쇄 회동하면서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로봇, 확장현실(XR) 등 핵심 분야에서 인재를 영입하고 특허·상표권 확보에 집중하는 등 차차기 미래 시장에서도 ‘초격차’로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기업 홀로 경쟁력을 쌓아나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판단 아래 사회·협력업체와 함께 성장하는 ‘상생 경영’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회장 취임 8개월 차를 맞은 이재용 회장이 그간의 행보를 통해 미래 비전을 위한 얼개를 내보이고 있다”며 “이제 신경영 선언 수준의 강한 비전을 제시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