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뜬금없이 떨어진
껍데기뿐인 검은 비닐봉지 하나
풋풋풋 달겨드는 웃음 채곡채곡 담아
웅비하는 새처럼
푸하하 날갯짓하며 날아오른다
전신주에 걸릴 듯
꽃나무에 사뿐 내려앉을 듯
몇 굽이 세상살이 넘고 넘다
달아나는 배꼽 움켜쥐고 나 살려라
떼구르르 굴렁쇠처럼 마구 뒹군다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길 모퉁이에
후줄그레 남겨질지도 모르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
꽃자리 한때처럼 지금
무슨 꿈 꾸며 뒹굴고 있는지
한동안 바라보며
바람 부는 벌판에 나는 서 있다
껍데기뿐이라서 좋다. 무거운 감자며, 당근이며, 양파를 가득 담고 찢어질 듯 견뎌온 골목들. 속을 다 쏟아주고 나니 미풍 기다릴 것 없이 제 날숨에도 날아오른다. 채우니 짐이요, 비우니 춤이다. 전신주에 걸린들, 꽃나무에 앉은들 나부끼지 않을 곳 없다. 꽃자리 한때라지만, 이미 누린 기쁨은 앗아갈 이가 없다.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