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을 연기한 공모액 200억 원 이상 대형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들이 잇따라 기업공개(IPO) 재도전에 나섰다. 최근 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합병 절차에 들어간 공모가 1만 원 이상의 ‘메가 스팩’이 나오면서 그동안 냉랭했던 투자 심리가 반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9호(NH스팩29호)는 이날부터 이틀간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 돌입했다. NH스팩29호는 NH투자증권(005940)이 올 처음으로 내놓는 대형 스팩이다. 공모 규모는 255억 원(공모가 2000원)이다. 발기인 물량 45억 원(초기 출자 16억 원, 전환사채 29억 원)을 더하면 총 조달 금액은 300억 원에 달한다. NH스팩29호는 이달 13~14일 일반 청약을 진행하고 이달 말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케이비제24호기업인수목적(KB스팩24호)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13~14일 수요예측에 들어간다. KB스팩24호는 KB증권이 지금까지 내놓은 역대 스팩 중 가장 몸집이 크다. 공모액 320억 원(공모가 1만 원)에 발기인 물량 100억 원(초기 출자 15억 원, 전환사채 85억 원)을 더한 총 420억 원 규모다.
이들 두 스팩에는 앞서 한 차례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투자 수요를 모으는 데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KB스팩24호는 3월 9일 일반 청약일을 나흘 앞두고 금융감독원에 철회신고서를 제출해 올 첫 낙마 스팩이라는 오명을 썼다. NH스팩29호도 같은 달 23일 수요예측 실시 하루 만에 상장 철회 결정을 내렸다.
스팩은 기업 인수합병(M&A)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 설립한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 기업)다. 일정 기한 내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투자자에게 원금을 돌려주는 안정성 덕분에 주식시장 변동성이 컸던 지난해에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연초 직상장 공모주 흥행, 스팩 금리보다 높은 시중금리 등으로 투자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는 공모액 100억 원만 넘어가도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을 줄줄이 철회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NH스팩29호와 KB스팩24호가 재도전을 결심한 건 최근 합병 대상을 선정한 대형 스팩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공모액 400억 원짜리 대형 스팩인 하나금융25호스팩(435620)이다. 이 스팩은 지난달 말 2차전지 검사 솔루션 전문기업 피아이이와 합병하기 위해 한국거래소에 예비 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하나금융25호스팩과 피아이이가 합병한 뒤의 시가총액 규모는 약 4888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2010년 스팩 제도 도입 후 가장 큰 규모다. 투자 전문가들은 하나금융25호스팩이 합병을 무사히 마친다면 대형 스팩 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시장에는 NH스팩29호와 KB스팩24호에 대한 회의적 반응도 여전히 남아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피아이이 합병 성공까지는 스팩 주주 설득 등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며 “현재 스팩 시장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재도전 시점이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