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서 건보·실업급여까지…勞政 대화창구 속속 닫힌다

[노정관계 살얼음판]한노총 경사노위 불참 후폭풍
노조서 회계장부 제출 거부하자
국민연금, 민주노총 추천인 해촉
실업급여는 노동계가 참여 중단
대통령실 "엄정 법집행 변함없다"
勞 "정부서 파트너 불인정" 격앙
노사정 논의체 해체 빨라질 수도

한국노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경사노위 참여 중단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1노총인 한국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 후폭풍이 심상찮다. 당장 경사노위뿐 아니라 이미 삐걱대고 있는 ‘노사정 논의체’들의 해체 속도까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계를 파트너로 삼지 않는다”며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엄정한 법 집행과 노동 원칙은 변함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노정 간 갈등은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8일 노동계에 따르면 정부 산하 운영위원회에서 양대 노총(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배제 움직임이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수면 위로 오른 것은 올해 초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양대 노총 추천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 추천 인사도 해촉했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최고 의사 결정 기구다. 지난달에는 건강보험료율을 심의하는 건보재정운영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양대 노총이 제외됐다.


정부는 양대 노총에 편중된 노동계 측 위원 구성을 다양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양대 노총이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 정책에 따라 회계장부를 제출하지 않은 것도 제외 배경으로 거론된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의 노동조합 때리기 일환”이라며 격앙된 분위기다. 노동 개혁 과제를 만든 주요 자문 기구들에 노동계 위원이 없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실업급여 개선을 위한 논의의 틀 역시 삐걱대고 있다. 양대 노총은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운영하고 있는 소득기반고용보험제도개선태스크포스 참여를 중단했다. 협의체 논의가 실업급여 기능 축소로 흐르고 있다는 데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노동계 위원이 배제됐다”며 “정부가 노골적으로 노동계를 대화 파트너로 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사정 논의체 중 가장 대표적인 경사노위에서 양대 노총이 빠지게 됐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경사노위는 전 정부에서 주52시간 근로제의 연착륙 방안인 탄력적근로시간제와 과로사방지법, 근로자대표제, 공공 부문 노동이사제, 임금체계 개편 등 20여 개의 굵직굵직한 사안을 노사 합의로 처리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이렇다 할 합의가 없는 상황이다. 경사노위 내에도 노동 개혁 과제 자문 기구들이 있다. 한국노총 이탈이 노동 개혁 동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노정 대화가 복원되기는커녕 점점 극단적인 대립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전체를 적대시하고 탄압하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심판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집회 현장에서 정권 심판을 정권 퇴진으로 수위를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복귀를 촉구하면서도 매달리는 식으로 노동계를 설득해 노동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노동 개혁은 임금과 근로시간을 두 축으로 한 제도 개편과 노사 법치주의라는 국정 방향을 아우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불참과 관련해 “공권력은 자행된 불법에 대해 눈감을 수 없다”며 “경사노위 유지를 위해 정부의 노동정책 원칙을 바꾸지 않는다. 엄정한 법 집행과 원칙이 불법 시위 문제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하면서 요구한 산하 노조위원장의 석방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의 보이콧으로 코너에 몰린 경사노위도 대통령실과 같은 입장이다. 경사노위는 한국노총이 복귀하지 않는 상황을 전제하고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이날 서울대총동창회 포럼 강연에서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도 있다”며 경사노위의 역할을 강조했다. 여당도 ‘새판을 짜겠다’는 경사노위를 지원할 분위기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4월 양대 노총에 주어진 경사노위 노사위원 추천권을 다양한 계층으로 넓히는 방향의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의 노사정 논의체가 지속될 수 있는지는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로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논의 기구다. 이날 최저임금위 3차 전원회의에는 양대 노총 측 근로자위원 모두 정상적으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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